인생은 원래 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답이 없는 것은 인간관계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앞에서 우리는 서로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어디까지 내 생각을 말해도 되는지를 매 순간 재며 살아간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법을 찾지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마 남이 보기에는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 ‘은지’와 ‘유진’이 있다. ‘은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사람이고, ‘유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서 사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 친구였던 두 사람은 마냥 행복하고 재밌었던 옛 기억을 더듬으며 만나지만, 지금의 ‘너’는 더 이상 옛날 ‘내’ 기억 속의 ‘너’가 아니다. 이 영상은 ‘유난히 길었던 하루의 일이다.’라는 나래이션으로 시작한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 영상에 대해서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 제작자 ‘박운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 과거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영상 속 은지는 뭔가 아픔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과연 사진 속 친구와 은지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가?

:은지가 어떤 아픔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 영화의 엔딩이 은지를 보여줬기 때문일 것 같다. 진의 입장에서 엔딩을 만들었다면, 진의 아픔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법이니까.

여러 장의 사진은 다 다른 은지의 친구들이다. 영화에는 반영이 하나도 안 되었지만, 은지는 음식에 대한 뛰어난 능력을 살려 요리를 전공하고 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 타지로 떠났고, 사진 속 친구들은 타지로 떠나기 전 친했던 고향 친구들이다. 진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다. 진은 은지와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음식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은지와 진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은지는 사람을 얕게 사귀고 매우 솔직하다. 진은 사람에게 마음을 잘 주고 싫은 티를 못 내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은 두 인물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은지는 음식을 잘 아는 능력 탓에 음식을 많이 가려 먹는다. 때문에 사람도 가려 사귀게 된다. 진은 음식이라면 뭐든 좋아한다. 때문에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요리를 전공하던 은지는 어릴 적 순수하게 음식을 좋아하던 때를 그리워하게 됐다. 음식을 가려 먹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사람도 가려 사귀는 자신이 때론 미웠다. 그래서 그 시절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한번’ 만나보기로 한다. 사진은 은지가 만나려고 한 어릴 적 친구들의 모습을 인화한 것이다. 진 역시 그들 중 한 명.

이런 컨셉은 영화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진이 은지에게 ‘너는 상운이랑 아직도 친한 것 같더라. 어떻게 유치원 친구랑 아직도 친하냐?’라고 묻자 은지가 ‘그냥 한번 만나본 거야’라고 대답하는 장면, 그 뒤 진이 은지에게 ‘그럼 나도 그냥 한번 만나보는 거야?’라고 묻자 은지가 ‘진아, 너는 좋든 싫든 아무나하고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반문하는 장면, 그리고 영화의 끝에서 또 다른 친구인 규준이에게 전화하는 장면 등에서 유추할 수 있다.

 

2. 이 영화는 ‘은지’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든 참는 ‘유진’ 이 아닌, ‘은지’의 시점에서 내용을 전개시켜 나간 이유가 궁금하다.

:두 인물을 설정할 때, 나는 나의 상반되는 두 모습을 인물로 표현하고자 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하지만, 때로는 싫은 티 못 내는 성격을 표현한 것이 각각 은지와 진이다. 두 인물이 서로에게 던지는 가시 같은 말은, 내가 스스로에게 종종 던진 질문과 비판이었다. 영화에서 둘 중 은지에게 보다 많은 비중을 둔 까닭은, 내가 본 나는, 두 모습 중 은지에게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다른 노래가 아닌, ‘잊어야 하는 마음으로’를 엔딩으로 선곡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노래를 듣다 보면 다들 그런 적이 있으실 것 같다. 분명 귀로 노래를 듣고 있지만, 눈앞에 그 장면이 보이는 상황... 나에게는 정승환 씨가 커버하신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그런 노래였다. 방금까지도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고, 그래서 더 공허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남겨진 인물이 그려졌다. 그리고 하얗게 김이 서린 창에 글을 쓰는 엔딩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선정했다. 그러나 섭외한 장소에 어떤 수를 써도 창에 김을 서리게 할 수 없었고, 결국 창에 글씨를 썼다 지우는 장면은 촬영하지 못하였다. 원래는 진의 사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동그라미를 지우며 사진을 떼는 장면을 촬영할 계획이었다.

 

4. 인간관계를 음식에 빗대어 표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5번에서 서술할 내용과 관련이 있다. 음식을 잘 알아서 음식을 가려먹는 사람과, 음식을 잘 몰라서 음식을 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음식 대신 사람을 대입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제목을 ‘미식가’로 정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 저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보면 안쓰럽다. 나는 그냥 천 원짜리 컵라면, 삼각김밥만 먹어도 아주 맛있는데, 저분들은 저 음식을 먹고도 이상함을 느끼는구나’

 

그러다가 문득

‘음식을 잘 아는 사람이 미식가일까,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 미식가일까?’

라는 물음이 생겼다.

 

이걸 영화로 풀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이런 고민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다. 제목을 보고, 두 인물을 보며

‘왜 제목이 미식가이지?’ ‘둘 중 누가 미식가이지?’

라는 물음을 가진다면, 나는 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 생각된다.

 

6.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내가 대학교에 와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뭐든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자세히 보면 비극이란 것이었다. 이걸 표현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 가장 컸고, 하트 역시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였다. 첫 장면에서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트를 보며 감탄하지만, 정작 그 사진을 붙여 보고 있는 은지의 상황은 비극과도 같으니까. 또한 장르를 코미디로 만들고 싶었다. 별 고민 없이 보면 재밌는 코미디이지만, 생각하며 보면 비극인 영화. 그래서 코미디의 요소를 종종 넣었지만 생각보다 웃음을 유도하고 살리기가 힘들어서 장르를 완전 코미디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런 의도는 마지막 장면 전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로 표현하였다. 절대 장면이 부족해서 엔딩크레딧으로 채운 건 절대절대 아니다.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전까지만 보면 코미디이지만, 지나가는 엔딩크레딧 뒤로 보이는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

 

 

 

     ’미식가’는 은지가 또 다른 친구인 규진이에게 연락을 하면서 끝난다. 이러한 은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냥 포기하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상처를 받고 또 받으면서도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은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있는지, 우리가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지. 앞서 말했듯, 인간관계에서 답은 없다. 누군가는 너무 주관이 강해서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또 시작한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어 결국은 먹어야 하는 음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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