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떼들

 

1장. 빛 바랜 청사진

 

“밤에 잠드는데 오래 걸립니까?”

“한 시간 정도는 뒤척이는 거 같아요.”

“사람들 만날 때, 아직도 어깨나 목에 힘이 들어가나요?”

“네. 아직은...”

“음... 저번 주하고 똑같이 처방해 드릴께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나약한 사람들이나 찾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찰칵찰칵,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보다 더 행복한 셔터소리가 울려 퍼진다. 꿈인가 싶다. 구석진 동네 도서관에서의 2년간의 암투 끝에 그토록 바랐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암 말기 환자의 투병보다 더 긴박했던 삶에 대한 의지는 도살장에서 서로를 물어야 끝을 볼 수 있는 맹견의 생존 본능보다 더 절박했었다.

나는 007가방에 돈 뭉치를 들고 의사들의 뒤를 닦아주다가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이 곳에 왔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교사가 된 사람들이 부럽기는 하다. 연어처럼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난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였을텐데... 어쨌든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항상 느끼지만 후회와 열등감, 비교는 나를 갉아먹는 최악의 병이다. 억누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진짜 동료는 만나기 힘들 것 같다. 폐쇄적이고 음침했던 그곳을 이미 경험해보았기에... 그래도 설렌다. 남자기 때문에...... 2년간의 독학, 2년간의 연애 공백 때문에 여자들을 볼 수 없었다. 여기는 여자 홍수다. 신규 혹은 혼인 적령기의 교사들을 보면 어쩔 수 없다. 나도 남자다. 그래서 더 복잡하다. 외톨이가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왔지만 저런 친구들을 한 번 품어봤으면 하는 흑심을 품고 있다.

이런 못된 생각들을 품어서일까? 난 오늘도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운동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간다. 이것뿐인가.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옷을 사러 가고, 혼자 커피숍에 간다. 심지어 혼자 교과 연구 모임을 한다. 난 어떻게 해서 이렇게 격렬하게 혼자가 되었을까? 군대 재입대하는 꿈보다 더 괴로운 말, 혼자......

‘내 잘못은 아니겠지? 난 똑바른 사람이야. 난 이 세상의 주인공이야. 난 정말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야. 내가 어디가 못나서?’ 오늘도 철저하게 자기 부정을 해본다. ‘내가 이상한가? 나는 그저 중고 신규로서 이방인일 뿐인가? 난 사회성이 없나?’ 그래 맞나보다.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게 되버렸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돼버린거지? 내 탓은 아닐거야. 나를 둘러싼 이상한 사람들의 탓이야. 난 상식이 있는 사람이니까. 너희들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바로 이 곳의 시스템이 잘못된 거니까. 여긴 별별 인간이 다 있는 곳이니까. 여긴 나같이 잘 난 사람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는 곳이니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난 분명 호감형 신규였다. 썰렁한 개그를 해도 동료, 선배들은 잘 받아줬고, 해야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자기 주장을 잘 하는 사람이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다. 한 번 놀기 시작하면 밤새 놀 거 같다. 손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뭐든지 열정적으로 임하는 사람이다.’

소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부담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서히 오해가 쌓여갔다. 처음엔 내 탓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갈등에 있어서 책임 없는 당사자는 없다. 나도 잘못을 했다. 나는 조폭 세계에도 있다는 한 가지 룰을 어겼다. 아니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잘 맞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인정하지 못했다. 내가 무조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런 경향이 심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라’는 니체의 말을 이기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이 곳에서 조연이 되어갔다. 가뜩이나 어두운 무대에 희미한 조명도 없어져갔다.

 

 

2장. 21세기적 전체주의

 

“이번에 신입교사 환영회가 있습니다. 환영회에서 자신의 장기를 뽐낼 수 있도록 준비해주세요.”

“장기 자랑은 어떤 게 좋을까요?”

 

선배들은 춤을 추라고 했다. 군대에서도 안 춰본 춤을 추란다. 교양없이 궁둥이를 흔들어야 한단다. 입바른 소리 잘하는 내가 한 번 참기로 했다. 그런데 터졌다. 남자는 여장을 하고 추란다. 대학교 새내기 환영회에서도 하지 않은 여장이라니, 국민신문고에 제보해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여장을 하란다. 우리는 남자는 둘, 여자가 셋이었다.

 

“아나,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여장을 왜 하죠?”

 

입바른 소리는 결국 동기들의 눈칫밥을 받게 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들쥐같이 생긴 동기 김서영이 내 얼굴에 냉소를 뿌렸다.

 

‘그냥 하지. 저 사람 왜 저래?’

 

분명 그 냉소에 그렇게 새겨져있었다. 몰상식에 대한 솔직함이 죄다. 이 놈의 주인공 철학이 죄다. 그날 밤은 몹시 피곤했다. 아까 일 때문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이를 꽉 물고 잠을 못 잤다.

김서영은 나와 달랐다. 애써 갈등의 단서를 만들지 않는 치밀한 성격이다. 뭐든지 감춘다.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닐 때는 들쥐이지만, 자신의 세력을 야금야금 만드는 고양이 같다. 아니 삵에 가깝다. 그 생기 없는 눈, 무뚝뚝한 표정, 낮은 톤의 목소리는 분명 나보다 음침하다. 난 얘가 제일 무섭다. 때로는 정치도 한다. 히틀러보다 좋은 선동력을 가졌을 것이다. 두부처럼 둔해 보이지만 링컨처럼 현명하다. 그 날 나에게 보낸 냉소는 정말 차가웠다. 그 불길함을 조금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너무 반짝 반짝 눈이 부셔~! GGGGG!"

 

결국 여장을 하고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우리 동기들 다섯은 낯선 이들 앞에서 궁둥이를 흔들어댔다. 속바지를 입고 스타킹을 신으며 수치심을 느꼈다. 남의 굴욕과 비굴 앞에 환호하는 정신 강간범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만행을 학생들 앞에서 열성적으로 강의했을 그들에게 구역질이 났다.

2차는 일본식 선술집으로 결정됐다. 1차에서의 무력감을 뒤로 하고 선배들을 따라나섰다.

 

“어? 담배 피워?”

“네... ”

 

연구부장 양춘구와 체육 전담 박일우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불을 빌려달라고 했다. 흡연자들은 이상하게도 통하는 게 있다. 그렇게 나는 양춘구의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양춘구는 내 주량을 물어봤다. 셋이서 3차를 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2차에서 문제가 생겼다. 양춘구의 ‘못된 손’ 때문이었다. 신규들을 향해 조언을 하며 옆 자리에 있던 김서영의 다리를 반복적으로 만지고 있었다. 김서영은 뿌리쳤다.

뒷끝이 좋지 않았다. 여교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널리 퍼졌다. 수석교사 김영임에게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김영임은 남교사 중심의 승진체계에 대항하는 여교사들의 우두머리였다. 교감 장승필과 대학 동기이지만 출산과 육아에 매정한 현실로 인해 승진에 뒤쳐져있었다. 양춘구는 고립됐다.

 

세계 1,2차 대전 같은 환영회가 끝나고 담배처럼 텁텁한 마음을 달래려 발령 동기인 최준모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최준모에게 전화가 왔다. 최준모는 김서영이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어봤다. 김서영은 남자 친구가 있지만 최준모를 좋아한다. 최준모를 자주 그것도 따로 불러낸다. 하지만 최준모는 이런 김서영이 부담스럽다. 최준모는 그래서 나를 불청객으로 적절히 이용한다.

‘김서영이 그래서 나를 싫어하나?’

그녀의 냉수같은 냉소도 이것과 관련 없다고는 말을 못할 것이다. 김서영은 못 이기는 척, 노래방에 오기로 했다. 새파란게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부른다. ‘나도 다 아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다음 곡 예약을 하는 순간 본능이 발동했다. ‘간주 점프’를 눌러준다는 것이 ‘취소’ 버튼을 눌러버렸다. 김서영의 눈이 무서워질 것 같았지만 최준모가 있기에 쿨한 척 웃기만 했다. 난 미안하다고 했지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이 사람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이 알고 있는 듯했다. 난 김서영에게 미안하다고 속였지만 나를 속이지는 않았다.

 

“내일은 한지로 탈을 만들거니까 신문지, 한지, 풀 꼭 챙길 것! 오늘 종례는 여기서 끝!”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 가방을 싸고 있는 사이 앞문이 열렸다. 양춘구다. 신규 교사 환영회 2차에서의 일 때문에 약이 바짝 올라있다. 그는 육군 대위 출신이다. 키는 작지만 승깔이 있어보인다. 잘못보이면 큰 일 날 듯 싶다. 교감 연수를 앞둔 남교사들의 승진 줄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여교사들에게 더 민감했을 것이다.

“김서영, 내가 부셔버린다!”

나는 흠칫 놀랐다. 내게 같은 배를 타자는 건지, 승진 줄을 잡으라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난 그녀를 잘 모른다고 했다. 내가 나서면 들쥐처럼 뒷담화를 하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리므로. 그는 계속해서 캐물었다.

“걔 뭐냐?”

그녀에 대한 소문을 하나하나씩 내게 캐내려고 한다. 모른다고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예......”

라고 했다. 이게 나중에 내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끝까지 모른다고 말할걸. 내 잘못은 이것 같다.

아니다. 완전한 내 잘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잘못은 반의 반이다. 이 일에는 총 4명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양춘구의 질책에 입을 연 한 사람의 인물이 더 있었다. 교직 3년차 박일우다. 체육 전담 선생이자 나와는 나이가 비슷해서 고민을 서로 나누는 사이다. 양춘구는 나와 박일우를 믿고 있었기에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뒤가 찜찜했다. 세상엔 비밀이 없으므로. 나와 박일우는 왠지 모르게 양춘구와 똑같이 나쁜 짓을 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음 한 켠엔 ‘우리가 맞았다! 우리가 역시 사람보는 눈이 있네!’라고 좋아했다.

나의 잘못은 다시 20%로 줄어들었다. 동학년 교사 정민기와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정민기는 사실 나보다 5살이 어리다. 교직 2년차이긴 하지만 어리숙하다. 동학년 회의에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쥐처럼 부지런히 퍼 날랐다. 시내에서 출근을 하는 관계로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이면 ‘관사에 있는 제 방에서 씻고 가세요.‘라고 말한 적 있었는데 이런 점 때문에 부담을 느꼈단다. 동학년 교사 장승은에게 듣게 된 또 다른 제보는 내가 모임에 참석하면 부담이 되므로 참석하기 꺼려진다는 것이었다. ‘난 부담스런 존재인가. 정이 많아서 동료들을 챙기려 한 것이 죄인가. 허허허......’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사실 정민기는 낯을 심각하게 가리는 친구다. 그의 차는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원인모를 짐이 가득 쌓여 있다. 난 그저 챙겨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걸 놓칠 양춘구가 아니다. 또 한 번 우리를 불렀다.

“걘 어떠냐?”

우린 또 다시 모른다고 했다. 이번엔 절대 대답하지 않으리라. 양춘구는 ‘남자다움’을 내세웠다.

“불알 달고 그러면 안 돼!”

그래도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나는 되새겼다. 뒷담화로 흥한자 뒷담화로 망하기 때문에 이런 자들의 결론은 뻔하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에.

 

박일우와 나는 그의 교실에 갔다 오면 항상 외진 술집으로 향했다. 우리도 입에 걸레를 문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더럽혀진 입을 알코올로 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입을 깨끗이 씻어도 다음 날엔 항상 속이 역했다. 눈꺼풀에 아령을 매달아 놓은 듯했다. 밤새 입을 소독해야 했기 때문에. 양춘구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왜 물어보는지 짐작은 간다. 나와 박일우를 선동해서 반대 세력을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육군 대위를 지내고 일본에서 경제학 학위를 땄던 지라 군국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진 그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권리도 없는 책임감만 떠안게 되었다. 승진이라는 동아줄을 미끼로 신규와 3년차에게 능력 밖의 일을 주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단지 술, 담배를 잘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러워서 내일도 술을 마실거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그를 대담한 성격으로 바꿔 줄 전지전능한 인간인가. 우리가 그렇게 잘났나. 우리도 단점 투성이의 인간인 것을. 그의 흠을 잡는다고 해서 내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 마음에 흠집을 낸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당시엔 나도 잘 몰랐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웠으므로. 예비군 훈련도 끝난 마당에 초록색 전투모를 쓴 사람의 지휘 통제를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므로.

우리만 변해갔다. 입이 거칠어져 갔다.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할 줄 알고 분위기도 띄울 줄 아는 우리가 분위기를 어둡게만 만들어 갔다. 틈만 나면 양춘구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고 우리를 양춘구에게 불려가게 만든 사람들을 욕했다. 그렇게 하면 잠시나마 양춘구가 우리 에게 매단 목줄이 풀릴 줄만 알았다. 그렇지만 그 목줄이 우리를 똥통으로 빠뜨렸다. 오히려 똥에게 미안 하리 만큼 더러운 심연으로 우리는 끌려갔다. 그 때는 몰랐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의 인간들처럼 우리가 이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입장을 안다고 착각했다. 3인칭의 시점이 필요했다. 우린 그냥 2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세상을 봤다. 양춘구가 만들어가는 적색의 세상을 적색의 눈으로, 적색의 술을 쭉 들이키며.

 

 

3장. 이기적인 진화론자

 

들쥐떼들과 섞이다보니 나도 들쥐가 되어갔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의 룰을 어겼다. 한 발짝만 물러서서 내 상황을 돌아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칼보다 말이 강하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운동회 준비를 할 때였다. 5,6학년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모여 역할 배분을 하기로 한 날이다. 나는 교장 선생님 그리고 양춘구와의 저녁 약속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갔다. 평소 약주를 좋아하시는 교장 선생님과의 자리에서 나는 소주 1병을 넙죽넙죽 받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발령 동기 고다은이

“아 냄새!”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술, 담배하는 남자가 딱 질색이라는 그녀는 한 눈에 봐도 짜증난 티가 역력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과의 자리라 사양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해해주지 못하는 눈치였다. 쉬는 시간이 되어 고다은에게 더 미안해져서 나는 양치를 하고 왔다. 휴대용 발 냄새 제거 스프레이도 전신에 뿌렸다. 내 자존심이 고다은에게 짓밟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원인제공을 했으니 참기로 했다.

내가 한창 날카로워진 걸 알아챈 최준모가 커피 한 잔을 제안했다. 나도 잠시 쉬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할 것 같기에. 가방 속 담배를 꺼내 최준모와 같이 교무실을 나서는 순간, 내 뒷통수를 후리는 고다은의 혼잣말이 들렸다.

“가지가지 하네. 술에 담배에. 저러다 폐암 한 번 걸려봐야지.”

나는 더 이상 이성의 끈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차분히 말하려고 노력했다.

“고다은 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말하면 제가 좀 서운하죠.”

“술 냄새에 담배 냄새까지 너무 하단 생각 안 드세요?“

라고 차갑게 쏘아 붙였다. 나는 고삐가 풀렸다.

”고다은 쌤!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까요?“

교무실의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오늘 괴팍한 학부모와 한 판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고다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동안 고다은도 그제야 후회가 되는 듯 표정이 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다은 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막말하시니 좀 서운합니다!”

“그건 기본적으로 지켜줘야 될 예의 아닌가요?”

“교장 선생님께서 마시라고 하시는데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

수세에 몰린 그녀가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김진현 쌤은 제가 어리다고 훈계할 목적으로 부르셨나본데, 저야 말로 기분 나쁘네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불러낸 것도 그렇고. 저는 쌤한테 조언 들을 만한 위치는 아닌 것 같네요.”

고다은은 휑하고 교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늦은 나이에 선생님이 된 것이 오늘만큼 서러운 적이 없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꼰대의 훈계처럼 보였나보다. 사람은 어차피 이기적인 동물일 수 밖에 없으니까.

 

길었던 교무회의가 끝나고 정민기가 내 옆에 불쑥 따라 붙었다. 정민기는 각본에는 전혀 없는 고다은을 편들기 시작했다. 정민기는 내게

“쌤. 그래도 5년 동안 볼 사이인데 고다은 쌤이랑 싸우면 어떡해요? 친해지자고 던진 말 같은데...”

나는 이번에 작정하고 무너지기로 했다.

“난 그럴 자격 있습니다. 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니까요!”

그 동안 정민기를 챙겨주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배은망덕이라는 의미를 체득했다. 정민기와는 얘기를 더 지속하기 싫었다. 서둘러 내 차로 향했다. 심호흡을 하며 넬슨 만델라의 명언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를 되새겼다.

 

넬슨 만델라를 좋아하는 건 고다은도 마찬가지였다. 고다은은 나를 빼고 발령 동기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앞뒤 맥락없이 내가 욕설을 뱉으며 위협했다는 과장된 얘기를 건넸다. 그 자리에 있던 김서영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김서영은 고다은의 편에 섰다. 사실 최준모와 함께 노래방에 갔던 날 밤, 이어진 술자리에서 김서영은 이유없이 고다은이 싫다고 했었다. 그런데 고다은보다 내가 더 싫었나보다. 여장 사건과 노래방 사건 때문이었나보다.

 

그 서리는 엉뚱하게도 박일우가 전부 맞았다. 박일우는 동향 출신 김서영을 생각보다 믿고 있었다. 김서영과는 말이 잘 통하기 때문에 평소 하는 짓은 그렇지만 천성은 착하다고 했다. 나는 불안했다. 김서영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니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데 김서영의 얼굴에서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한 숨을 크게 쉬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김서영은 틈만 나면 후악후악 한 숨을 몰아쉬곤 했다. 박일우와 김서영은 카풀을 하며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출퇴근을 같이 하며 김서영과 가까운 사이라고 느낀 박일우는 양춘구가 준 과제를 해내려고 했다. 그 때까지도 박일우를 믿었다. 나도 사실은 김서영이 궁금했다. ‘왜 나를 싫어할까? 내가 최준모랑 항상 같이 다녀서 낄 틈이 없어서 그런가.’ 박일우가 이야기를 잘 해오면 나도 거기 얹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김서영은 고단수였다. 기가 막힌 설계를 했다. 박일우는 생각보다 순진했다. 김서영은 환영회 2차에서의 일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박일우는 악셀을 밟았다. 환영회에서의 일로 양춘구가 주시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귀띔해주었다. 박일우와의 대화가 끝나자 김서영은 흐뭇한 표정으로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다시 눌렀다. 김서영은 수학을 잘했다. 수석교사 김영임에게 달려갔다. 양춘구에 대립각을 세운 김영임에게 자신은 잠재적 고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영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부장님, 요새 신규랑 저경력 애들 말썽부리던데... 어떻게 된 거에요?”

“그건요... ”

“내년에 교감 연수 받으셔야죠? 저희도 교원평가 할 수 있는 거 알고 계시죠?”

“박일우랑 김진현이 하소연한 거 들어줬을 뿐입니다.”

 

양춘구는 잡아뗐다. 잡아떼기만 했어도 좋았다. 우리에게 누명을 씌웠다. 박일우와 내가 고자질 한 것이라고. 본인도 살아야 했나보다. 양춘구의 똥을 우리가 치우게 됐다. 선전포고 상태에서 양춘구는 자신의 식판만을 생각했다. 박일우와 나는 그간의 일들에 대한 책임감을 모두 떠안게 되었다. 들쥐떼들은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김서영은 우리가 양춘구에게 고자질을 했다며 괴벨스 못지않은 대중 선동 능력을 과시했다.

 

금요일 수업 종료 후 김영임은 나와 박일우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나는 가족들과의 선약으로 인해 함께 할 수 없었다. 김영임의 입장이 난처해질까봐 박일우는 제안에 선뜻 응했다.

 

“요새 신규 쌤들 문제는 잘 알고 계시죠?”

“아... 저희도 억울한 게 많습니다.”

“박일우 쌤도 올해 3년찬데 신규랑 똑같이 놀아서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연차도 있으니 똑바로 하세요.”

 

김영임은 웃는 얼굴로 박일우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김서영의 녹음 파일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춘구와의 협정(?)을 통해 우리를 정치의 희생양으로 점지했다. 사실 김영임은 나같은 초짜에게는 관심 없었다. 이미 박일우가 타겟이었다. 양춘구의 잠재적 팔 다리를 잘라 낼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박일우는 다음 날 술자리에 나를 불러냈다. 박일우는 눈물을 흘렸다.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연차 쌓였으면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를 왜 그렇게 들어야 하는지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싸움닭인줄 알았던 그는 들쥐떼 앞에서 꼼짝 못하고 당하고 왔다. 나와 고다은 사이에 있던 일까지 덤으로 물어뜯기고 왔다.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했다. 진작에 김서영을 조심하라고 했던 내 말을 믿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을, 내 말을 믿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생긴 일이라고 박일우는 자책했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 자리에 혼자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들쥐떼들과의 대화를 만류했더라면. 들쥐는 사람과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족속이라는 것을 설득하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우리는 또 적색의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양춘구의 말을 한 발짝만 물러서서 들었다면 휩쓸리지 않았을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왜 그토록 부질없는 백지수표만 믿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려 들었는지 말이다. 박일우는 점점 메말라갔다. 입이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 그런 박일우를 보고 있는 것이 나도 너무 힘들었다. 그 사람의 입장을 100% 이해할 수 없었기에 피상적인 위로만 건네는 나도 괴로웠다.

나는 잠깐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힘들었다. 고다은과의 언쟁과 양춘구와 김영임의 세력 다툼이 조장한 들쥐떼들의 습격이 말이다. 금요일 수업을 다 마치고 병가를 냈다.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남해 바래길로 떠났다. 지금 떠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혼자 떠났다. 남해 바래길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고 올 것인가. 내가 떠났던 여느 여행처럼 설레지는 않았다. 그저 들쥐떼들이 창궐했던 동굴에서 도망쳐 나온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 이 곳이라는 점에서 여행의 끝이 두려웠다. 마치 이등병이 백일 휴가를 마치고 다시 광활한 내무반 침상이 펼쳐지는 곳으로 돌아갈 때의 느낌이 연상되었다. 그래도 그 곳을 떠난 동안은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여행에 집중해야 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고개 숙이기 싫었다. 눈 앞에 펼쳐질 장관을 나의 고뇌로 더럽히기는 싫었다.

생각을 많이 해봤다. 지금은 내가 원했던, 한 발짝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그 사람들의 과오를 논하기 전에 내가 했던 잘못은 무엇인지... 차근차근히 생각해보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얽히고 설키어 있었다. 나, 박일우, 김서영, 정민기, 고다은. 그리고 편이 갈렸다. 우리가 수세에 몰렸다. 그 촉매제가 양춘구였고 김영임은 점을 찍었다. 우리의 잘못은 단지 양춘구에게 동조의 뜻을 보였다는 것, 오해를 살 만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를 풀지 못했다. 억울하긴 해도 그 오해를 슬기롭게 풀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일우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눈물까지 흘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번 일의 당사자들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분명 힘든 길로 갈 것이다. 우리가 불리하다. 김서영의 언변에 넘어갈 순진한 교사들이 많다.

어떻게 해야 이 일이 해결될까? 잘못한 게 없어도 용서를 빌어야 할까라는 비굴한 생각까지 해봤다. 그럴 수는 없다. 내 신념이 허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분하더라도 눈칫밥을 견뎌내며 사는 것이 내게는 나을 것 같았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해결책은 양춘구에게 진실을 규명하도록 요구하는 일이다. 이것만 해결되도 들쥐떼들과의 분쟁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양춘구 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양춘구에게 당돌하게 원하는 바를 요구한다면 그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나를 압박할 것이다. 치열하게 비열한 짓을 했지만 절대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 교장에게 투서를 보내볼까? 아니다. 요즘같이 CCTV 설치가 잘 된 시기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교장은 나보다 양춘구의 입장을 더 신뢰할 것 같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제보해볼까? 아니다. 이 일은 나에게만 심각할 뿐 다른 사회의 사람들의 입장에선 별거 아닌 문제다. 양춘구도 그래서 일을 이렇게 키워왔나 싶다.

그럼 어떻게 할까? 조언을 들어볼까? 아니다. 지금은 나의 목소리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나를 믿어보자. 드디어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저 의연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당장은 힘들어서 잘 될지 모르겠지만 다짐했다. 나의 지분이 있기도 한 이번 사건을 담담히 맞서 나가자고 말이다.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해명할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명하자고 말이다. 피하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이렇게 다짐하고 나니 심신이 안정되어갔다. 다시 박일우와 들쥐떼들을 마주 할 수 있을 튼실한 정신 자세가 잡혔다. 한이 가득한 서편제의 배경이 된 바래길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왔다.

 

 

4장. 초자아의 종말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스팅의 <English man in New York>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후렴구다. 박일우와 나는 고립되어 갔기 때문이다. 우리를 예전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최준모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들쥐떼들은 서서히 다른 무리들에게 페스트를 전파해갔다. 다른 이들은 상식적인 판단 없이, 그 동안 우리와의 추억에 관계없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교무 회의 중 우리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유 없이 뒤가 간지럽기도 했다. 예전 같이 우리의 말 한 마디에 호의적으로 반응해주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 한 번 우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동안 담담하고 의연하게 해쳐나가기로 스스로 약속했건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결심이 물러졌다.

 

이 바닥은 왜 이렇게 좁아 터졌을까? 또 한 번 일이 터졌다. 바로 동료 장학 때문이었다. 서로의 교실을 공개하고 함께 수업의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나가는데 목적이 있지만, 교사들에게는 1년 중 가장 예민한 시기이기도 하다. 수업 후 협의회에서 까딱 말을 잘못했다가 사이가 틀어지는 교사들도 많았다.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여기서 잘못했다가는 아예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사실 ‘여기서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수업을 공개한 모든 교사들에게 무조건 만점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만 잘한다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정말로 사회 생활은 운전과 같다. 내가 아무리 방어 운전을 한다고 해도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점심 식사 후, 동학년 교사 임소라가 뜬금없이 찾아왔다. 아무런 교류도 없던 그녀가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용건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얼굴이 붕 떠 있었다. 일정을 착각해서 수업 공개가 오늘임을 방금 알았다고 했다. 6교시 과학 수업을 공개하기로 했단다. 5교시에 애들 자습시키고 나와서 자신의 실험 준비를 도와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조금 터무니없었다. 5분 정도 수업을 일찍 마치고 나와서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녀는 대책 없이 울며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 화장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나도 당황해서 일단 교실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수업 마치고 최대한 빨리 나와서 도와드릴게요.’

 

임소라의 책상에 쪽지를 남기고 5교시 수업을 진행했다. 약속대로 아이들을 정숙시키고 5교시 종료 5분 전에 나와서 바늘구멍 사진기 도안대로 칼질을 해주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임소라는 실험 절차에 대한 이해가 되어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험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신규인 나도 처음 접해보는 학습 내용인지라 시키는 대로 도와주기만 했다. 드디어 6교시 임소라의 차례가 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말은 빨라지고 중언부언하고 두서도 없었다. 수업 준비가 많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예상보다 수업이 10분 일찍 끝나 그녀는 몹시 당황한 듯 보였다. 닭똥같은 눈물을 아이들 앞에서 흘리기 시작했다.

오늘 공개 수업에 대한 협의회가 열렸다. 6교시 임소라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울먹이기 시작했다. 수업 준비에 대한 부족함을 눈물로 채우려는 듯 했다. 다들 수업에서 잘한 점과 보완할 점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그녀의 얼굴은 어두워져 갔다.

 

“아이들이 볼 수 있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잘 만드셨고 수업 흐름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자신 있게 수업하시면 더 좋은 수업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영혼 없이 장점을 언급했다. 보완할 점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몇 겹의 포장을 해서 빙빙 돌려서 말했다. 누가 봐도 문제없을 만한 의견 표출이었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나도 공개 수업을 했다. 미리미리 수업 자료를 만들고 수업 내용을 외우다시피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사전 협의회에서 멘토 서재희 교사의 조언을 듣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런대로 수업은 잘 되었다.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는 방법 알아보기’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반응중심학습모형과 교육 연극을 결합한 수업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수업 직후 서재희가 다가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수업 자료가 맨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몸으로 표현하기를 할 때,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버려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드신 교구가 너무 작아 와 닿지 않았습니다.”

 

서재희를 제외한 몇몇 교사들이 작정한 듯 장점 언급은 없이 사소한 문제점들을 찾아 폭격하기 시작했다. 서재희도 ‘이게 무슨 상황이지?’ 라는 반응을 보였다.

 

“걔가 또 여우짓을 했네요.”

 

멘토 서재희가 찾아왔다. 분했다. 그래도 수업 준비는 철저히 했기에 이 정도에서 끝이 난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난 정보가 너무 느렸다. 임소라는 이미 물밑 작업을 진행해 놓았다. 자신과 가까운 동학년 교사들에게 정치를 했다. 자신의 수업이 잘 안 된 탓을 모두 내게 돌렸다. 자신의 부족한 수업 준비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이 그저 내가 실험 준비를 같이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수업 아이디어를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동조한 몇몇 교사들이 일부러 나의 수업에 가열차게 비판하기로 입을 모았던 것이다.

임소라는 이미 교직 15년차 서재희와도 충돌이 있었다. 작년 공개 수업 때도 서재희로부터 경미한 지적을 받자 교장에게 곧장 달려가 불만을 표출하고 이를 핑계로 사흘 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장과 교감, 그 외 경력 많은 교사들에게 찍혔지만 타고난 정치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선동해낸 천상 여우였다. 교직 15년차인 서재희를 자신의 위기 탈출의 제물로 삼았을 만큼 얼굴이 두꺼웠다. 서재희와 내 입장에서는 그저 귀여워보였다. 누가 봐도 잘못된 사람이 누구인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냥 개의치 않기로 했다.

 

“저 사람... 공개 수업 때 임소라 선생한테... ”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와서 좋다고 했대.”

“동학년 수업하는데 왜 안 도와줘?”

“저 사람하고 엮이면 안 되겠다.”

 

너무 방심한 탓일까? 임소라의 측근들은 대놓고 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없던 이야기도 만들어서 지어냈다. 심지어 최준모와 박일우에게 접근하여 나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최준모는 나의 억울한 점들을 잘 들어줬고, 이미 호되게 당했던 박일우는 내 얘기에 집중했다. 당분간 술로 입을 닦고 귀를 자르고 싶어하는 날들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발령 동기들과도 동학년 교사들과도 어울릴 수 없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흔들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균열은 나와 박일우 사이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일로 서로 지쳤다. 처음처럼 서로 의지하던 사이가 아니라 십자가를 하나씩 짊어지고 괴로워하고 있는 서로를 보며 질려갔다. 서로의 얼굴에 비친 괴로움이 우리 사이에도 번져갔다. 나도 박일우도 영혼이 더러워져 갔다.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씩은 술자리를 가지며 양춘구와 들쥐떼들을 욕했다. 우리 선에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제 3자와 좋은 시간을 보내려 애써도 결국 모든 이야기의 화제는 우리의 억울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제일 싫어하던 양춘구의 행동을 우리가 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박일우와의 술자리가 싫어졌다. 술자리를 하고 오면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변비에는 비데를 써도 변이 묻어나듯 우리는 더 아파갔다.

들쥐떼들을 그렇게 싫어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들쥐로 변해갔다. 무너진 자존감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출구가 없었다. 이유없이 나는 박일우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박일우와 같이 있으면 사납게 어두워지는 나를 알아가고 부터였다. 박일우와는 즐거운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박일우와 있으면 학교에서 정치를 하는 것 같았다.

‘김서영을 조심하라는 내 말을 들었더라면, 김서영에게 양춘구와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양춘구의 질문에 대답했던 나를 언급해주지 않았더라면...... 다 이 사람과 같은 배를 타서 그렇다’

라고 박일우를 심적으로 책망하기 시작했다. 박일우의 벗겨진 머리가 갑자기 맘에 들지 않았다. 박일우의 매부리코가 그냥 싫었다. 박일우의 새 구두가 싫었다. 박일우가 힘들 때마다 쉬는 한 숨이 그렇게 싫었다.

점점 나는 박일우를 피했다. 박일우와의 술자리도 줄어들었다. 나는 항상 수업이 끝나면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박일우가 불러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만 댔다. 그러면 안 됐지만 그저 사람이 싫었다. 약품 상자에 넣어 놓은지 1년이 지난 우울증 약을 꺼내 먹었다. 그래야 어깨에 힘이 빠졌다. 술은 혼자 마시기 시작했고, 밥도 혼자 먹었다. 그저 그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세상을 향한 화살은 모두 그에게 날아갔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고마운 존재에서 내 화살을 받아주는 불쌍한 존재로 그는 변해갔다. 흡혈귀에게 물리면 흡혈귀가 되듯이 나도 들쥐가 되어갔다. 들쥐가 되지 않은 건 박일우 뿐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박일우는 의원면직을 신청했다. 그렇게 힘들게 온 학교를 뒤로 하고 고향에 내려가 매형의 사업을 돕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다. 박일우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섭섭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 5할은 넘는 것 같기에. 나는 형의 자취를 알 만한 가치도 없는 인간이기에. 나도 그 들쥐떼와 다를 바 없는 들쥐이기에. 다만 ‘떼’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조직이 없는 들쥐일 뿐. 나는 더 사악한 들쥐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박일우의 근황을 물어보면 모르쇠로 일관했다. 내 잘못은 5할이 아닌 2할로 축소, 은폐하여 말했다. 악어의 눈물도 흘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강아지의 탈을 쓰고 다른 조직 가입 문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최준모와 친해지면서 박일우를 잊기로 했다. 그저 나는 박일우의 피가 튀지 않게 피했다.

그렇지만 최준모와의 사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를 제외한 발령 동기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부터이다. 왜곡된 시나리오를 지속적으로 접하다보니 최준모는 결국 세뇌되어갔다. 내가 박일우를 피했던 것처럼 최준모 또한 티나지 않게 나를 피해갔다. 나는 마침내 진짜 혼자가 되었다. 혼자 급식을 먹고, 혼자 우유를 먹고, 혼자 수업 협의를 한다. 다른 교사들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올 때가 허다했다.

 

 

5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우리들은 모두 들쥐다. 들쥐떼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들쥐떼가 모여 들쥐떼들이 된다. 시작은 타인을 들쥐라고 판단한 순간부터 이루어졌다. 김서영과 정민기, 고다은과 임소라를 들쥐로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박일우를 물어뜯은 들쥐이건만 세상 사람들 모두를 들쥐로 착각했다. 들쥐같이 사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점점 일이 커져갔다. 이제는 들쥐떼들을 욕할 수 없다. 들쥐떼를 욕하기 전에 내가 들쥐라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됐다. 나는 들쥐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했다. 들쥐떼들의 세계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다. 한 명이 들쥐가 되면 다른 이도 들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들쥐떼가 되지 않으려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전부 악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악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겠다. 또 한 명의 들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용서와 화해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도 동물의 본성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한 순간만 인내하고 참으면 될 것을 어느 누구도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한 사람만 들쥐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는 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들쥐가 되지 않았다면 박일우는 물리지 않았을 것이고, 최준모도 들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서영이 들쥐가 되는 것을 말려주었다면 우리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들쥐떼들에게 제일 많이 물어 뜯기고도 들쥐가 되지 않은 박일우가 진정한 사람이었다. 박일우는 사람이 들쥐만큼 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내가 들쥐처럼 변할 때 왜 들쥐처럼 나를 물어뜯지 않았을까? 아니면 너무나 순진해서 이렇게 들쥐들이 창궐하는 세상을 무서워한 탓에 이 곳을 홀연히 떠난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하고도 잔인한 사실은 우리를 맹렬히 물어뜯었던 들쥐떼들은 태연하게 잘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도 나처럼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오늘도 약에 의지해 잠을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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