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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이크와 삶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올드보이>,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 <살인의 추억> 스틸컷.

  <살인의 추억>부터 <올드보이>, <킹스맨>까지. 모두 롱테이크씬으로 유명한 작품으로써 길이 회자되어온 작품들이다. 롱 테이크는 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쇼트: 영화에서 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 이하 '장면'으로 이해해도 무방).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쇼트는 10초 내외인데 비해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진행되는 것을 롱 테이크라고 한다. 앞서 말한 영화들의 경우 오랜 시간 지속되는 롱테이크 액션씬으로 유명하다. 등장인물들 간의 짜임새 있는 액션은 관객에게 충분히 흥미로울 만하다. 그러나 롱테이크의 극적 효과를 그저 ‘흥미를 위한 눈요깃거리’ 정도로 생각하기에는 이르다. 롱테이크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의 어법은 단지 어법으로 머물지 않고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감독과 관객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다음과 같은 예시를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하는 영화, <1917>

영화 <1917> 스틸컷.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바탕으로, 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 주인공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겪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다. 이 영화는 48개의 롱테이크를 이어 붙여 마치 영화 전체가 편집점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인물이 겪는 전쟁터의 현장을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물론 전쟁터의 리얼리티를 드높이는 기술적, 형식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이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감독의 의도와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이 영화의 롱테이크가 두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관객은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해 둘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 한 번 FI, FO를 통해 시간적 흐름의 단절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주인공 중 한 명인 ‘스코필드’는 내면적 변화를 겪게 된다. 전반부에는 권태로운 전쟁에 지쳐 냉소적이었던 그가 다른 한 주인공 ‘블레이크’와의 대화를 통해 후반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왜 자신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 던져져 목숨을 걸고 나서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결국 이 영화는 피투(被投: 내던져짐)성을 지닌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적 측면을 롱테이크 촬영 기법, 한 번의 암전을 통한 앞뒤 이야기의 양분화를 통해 더욱 잘 강조해냈다.

 

  느리고 긴 호흡으로 인간적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감독 홍상수

영화 <풀잎들> 스틸컷.

  홍상수 감독의 작품 특징을 꼽으라면 롱테이크를 빼놓을 수 없다. 식탁 위에 음식이나 술을 올려놓고 인물들끼리의 긴 대화를 통해 영화를 전개하는 그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영화인들에게 이미 유명하다. 커다란 사건 없이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구성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롱테이크와 어떤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까?

  우선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주로 상투성, 통념과 싸우는 영화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그의 몇몇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사회적으로 비난받게 되는, 얽히고설킨 욕망의 중첩을 이루는 관계망을 형성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언행을 하는 인물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무조건적인 인과응보식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속 시원한 결말이나 권선징악 등의 교훈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배격한다. 그는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맥스와 같은 할리우드적 어법 요소들을 영화에서 지워버린다. 매번 일정한 흐름을 가진 할리우드식 사건 전개를 피하고 고정관념을 깨버리기 위해서다. 이것이 그가 롱테이크를 지향하는 이유와도 같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한 쇼트 당 시간은 4~5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쇼트를 짧게 짧게 촬영하고 수천 개의 쇼트를 이어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편집 과정에서, 쇼트와 쇼트 사이에는 논리가 개입된다. 쇼트를 건너 뛸 때마다 그에 대한 논리가 자동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이 A를 회상한 다음 B라는 행동을 한다면, A가 원인이고 B가 결과가 되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이러한 명확한 인과론의 세계를 거부한다. 삶에 대한 어느 한 가지의 대답, 세상에 대한 하나의 언술을 배격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의 우리가 단선적인 사고 흐름이 아닌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특정 행위를 하게 되는 것처럼, 홍상수 감독도 극 중 사건에 대해 단일한 해설을 제공하지 않는다. 100명의 관객이 있으면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100가지의 독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홍상수 감독은 롱테이크를 통해 사건에 대한 편집자의 관여를 줄임으로써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획일적인 방법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사고 과정, 삶, 세상을 그려나간다.

 

 

왼쪽부터 영화 <그래비티>, <버드맨> 스틸컷. 알레한드로 감독은 두 작품으로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처럼 롱테이크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드높임으로써 관객의 몰입도 또한 높인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관객의 주관적 해석을 유도함으로써 영화가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닌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예술’이 될 수 있도록 완성한다. 이는 ‘현실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인 것이다’라는 사실주의적 예술의 풍조와도 연결된다.

우리의 실제 삶은 편집된 쇼트의 집합보다는 끊이지 않는 롱테이크에 가깝다. 롱테이크와 삶은 어쩌면 긴밀한 연결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임채연  molvonya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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