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에 가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입니다. 넷플릭스의 성공에 힘입어, 아예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들마저 생겨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월별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앱에 올라온 모든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덕에, 현대의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을 접하며,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영화를 분석해보려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영화 분석을 위해 다양한 글들을 읽다 보면, 처음 들어보거나 이름만 들어본 용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 용어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영화는 문학의 연장선입니다. 모든 영화는 글로 된 시나리오에서 출발하고, 시나리오는 문학의 한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영화와 관련된 용어들은 대부분이 문학에서 출발했습니다. 장르적 유사점이 있는 연극에서 쓰이던 단어도 많고, 소설에서 쓰이던 말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 감독이 만들어낸 용어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평론가들의 평을 보면 이러한 용어들이 쓰여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설명이 같이 쓰여 있지만, 그럼에도 쉽게 와 닿는 용어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한번쯤은 듣고 넘겼을 법한 용어들을 실제 영화에서 쓰였던 예시들과 함께 간단히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를 감상할 때 한번쯤, 여기서 왜 이런 소품이 등장했는지, 저 결말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오늘 소개한 개념들을 바탕으로 이해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클리셰

 영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클리셰, 또는 클리셰 파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클리셰를 따랐다’는 말이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요.

 클리셰는 인쇄 연판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인쇄 연판이란 활자판으로 인쇄하던 시절, 많이 쓰이는 단어를 미리 묶어두어 인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처럼 미리 묶어 놓은 활자에서 출발한 클리셰라는 단어는, 시간이 지나며 진부한 표현, 또는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을 의미하는 단어로 의미가 변했습니다. 어원도, 현재의 뜻도 우리나라 관용어구인 ‘틀에 박힌 표현’이나 영어의 ‘stereotype’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쪽에서는 거의 관례처럼 굳은 연출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클리셰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일종의 법칙처럼 작용하여 작품을 단조롭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클리셰가 된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사용했고, 이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클리셰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리셰를 사용하는 것은 왕도를 따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포 영화 몇 가지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공포 영화의 장면들로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진입하는 주인공 일행, 자꾸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일들, 차와 전화의 고장으로 완전히 고립된 일행, 결국 주인공만 살아남거나 모두 죽는 결말 등이 있습니다. 어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장면들이 클리셰를 따른 장면입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공포 영화 <스크림>에서는 대놓고 ‘어떤 상황에서든 “금방 돌아올게”라는 말 하기’가 공포 영화의 금기라고 말하는 대사까지 나옵니다. “금방 돌아올게”라는 대사는 클리셰, <스크림> 속의 공포 영화의 금기를 언급한 대사는 클리셰 파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존의 클리셰를 아예 언급하여 그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클리셰 파괴로 <스크림>은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물론 <스크림>은 워낙 성공한 영화라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지만 말이지요.

 아예 클리셰를 대놓고 따르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캐빈 인 더 우즈>는 대놓고 이전 공포 영화들의 클리셰를 보여주며 살인마만 바뀌고 등장 캐릭터들은 똑같이 움직이는 공포 영화들을 비판하였습니다. 코미디 영화들 중에서도 클리셰를 부수거나, 대놓고 따르는 방식으로 웃음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맥거핀

 본격적으로 맥거핀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연극 용어 하나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체호프의 총’이라는 용어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가 제시한 극의 장치 이론인 ‘체호프의 총’은 간단히 말하면 등장한 요소는 무조건 쓰고, 필요 없는 요소는 과감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3장으로 이루어진 연극의 1장에서 총이 나왔다면, 2장이나 3장에서 무조건 그 총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굳이 시간을 들여 언급한 부분은 그 이후 장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쓰인다는 것인데,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역시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맥거핀입니다.

 맥거핀이라는 말은 공포 영화의 거장인 알프레드 히치콕이 제시한 개념으로, 이야기에 동기를 부여하고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채 작품에서 퇴장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였고, 최근의 예시로는 <시빌 워>가 있습니다. <시빌 워>의 시작 부분에서, 히어로들은 히어로 등록과 관련한 ‘소코비아 협정’때문에 갈등을 겪게 되고, 이 갈등에 몇 가지 사건들이 더해져 후반부에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소코비아 협정’은 초반 갈등의 원인이 된 것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저 두 주인공을 싸우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만, 초반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요소인 것입니다.

 이런 맥거핀은, 개념 자체가 헷갈리는 용어입니다. 초반에 중심적인 역할을 가진 요소이고, 후반에는 사라진다는 점은 얼핏 듣기는 쉽지만 흔히 말하는 ‘미해결 떡밥’과 너무 비슷합니다. 이러한 회수되지 않은 복선과 맥거핀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단순히 말하자면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입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시빌 워>의 사례에서, ‘소코비아 협정’의 체결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협정이 체결되었는지, 혹은 체결되지 못했는지보다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히어로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당장의 맥거핀이 아무도 예상치 못하였던 복선일 경우도 흔하지 않을 뿐 존재합니다. 잘 쓰여진 맥거핀의 경우는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진다고 생각한다면 두 개념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지요.

 맥거핀과 관련해서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영화 중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다루려면 조금 더 많은 분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종강호에서 몇 가지 다른 영화들과 함께 다루면서 맥거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영화 관련 용어들 중 어려울 수 있는 용어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용어들을 바탕으로, 어렵게만 느껴졌던 영화 해석들을 읽어보고 영화를 다시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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