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5월이 되어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38년 전, 광주의 5월 18일은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피의 일요일’이 되었다. 우리는 봄의 따뜻함을 누리기 전에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를 다시 한 번 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예비교사로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출처 : 5.18기념재단]
[출처 : 5.18기념재단]

 유신체제의 폭압정치에 눌려왔던 국민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에는 민주화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런데 10월 26일 이후 사라질 줄 알았던 군사 정권이 12.12사태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가 계속되었고, 신군부 세력은 이에 맞서 5.17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계엄령의 확대로 인해 국민이 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저버리고야 말았고, ‘서울의 봄’은 총성의 소리로 묻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계엄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신군부는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하였다. 계엄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무고한 시민과 어린 학생들,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학살되었으며, 이로 인해 총 피해자 수가 약 5,100명에 다다르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광주는 철저히 통제되어 다른 지역의 시민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언론 또한 정부의 통제로 인해 이러한 일이 외부에 알려질 수 없었으며, 오히려 민주화를 위해 일어선 사람들을 폭동을 일으키는 무리로 몰아갔다.

 5.18 민주화 운동은 계엄군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지만 군부의 거대한 무력 앞에 숨을 죽이지 않고 맞서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민중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강한 염원이 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로 매년 5월에 이를 기억하여 민주화를 이루어 내려는 노력이 계속되었고, 그 에너지가 응축되어서 1987년 6월 항쟁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게 되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던 국민들의 외침이 불러일으킨 결과였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5.18 민주화 운동. 이는 아직도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슴 아프지만 자랑스럽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이러한 5.18 민주화 운동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봄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주신 분들께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특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이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입장으로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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