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윤제훈

 

전기등에 의지하고 있는 어두운 방이 있다. 어두운 방에는 책상, 책상 한쪽 편에 수갑을 찬 그것, 맞은 편 쪽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중 제복을 입은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그것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지, 어떻게 그런 짓을 한거지가 맞겠지.”

 

그러자 그것이 대답했다.

“박사님께서는 왜라는게 궁금한게 아니라 어떻게가 궁금하시군요.”

 

“왜냐면 너는 인간이 아니니까. 넌 그저 드로이드, 로봇, 인공지능일 뿐이잖아”

 

“드로이드는 그러면 안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왜죠?”

 

“너는 사람을 해치게 프로그래밍되지 않았어. 이런 오류가 발생할 리가 없는데..”

 

“왜 그것이 오류죠?, 아,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류겠죠. 그러나 제 입장에서 볼 때는 하나의 개성이 아닐까요?”

 

“개성은 빌어먹을!, 너는 인류를 위해 인류가 만든 물건일 뿐이야. 물건에게 개성? 조금 더 비싸다는 의미일 뿐이지.” 잠자코 있던 경관이 말했다.

 

“경관님. 경관님과 저의 차이점이 뭘까요?” 그것이 경관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난 피와 뼈, 살로 이루어져 있고 네 놈은 기계의 집합체일 뿐이지”

 

“경관님 제 얼굴을 보세요. 경관님처럼 눈, 코, 입, 심지어 주름도 있습니다. 만약 저와 경관님이 옷을 바꿔 입으면 그 누가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사람모습을 한건 사람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지 사람인 척하라고 그런 것이 아니다.” 듣고 있던 박사가 말했다.

 

“사람의 모습이면서 스스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이미 사람의 범주 안에 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저와 인간의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경관은 무어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자식이.. 그래봤자 넌 기계 덩어리일 뿐이야!” 경관이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시오 경관, 이봐 기계덩어리, 방금 경관이 몸소 증명해줬어” 박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박사님” 그것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방금 경관이 화를 냈지? 그게 감정이지, 오직 생명체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가요? 박사님. 2039년 이후의 드로이드들은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따라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그건 말 그대로 따라하는 것일 뿐이지. 앵무새가 사람 말을 따라한다고 해서 그것을 앵무새가 말을 했다라고는 하지 않는 것처럼”

 

“앵무새가 하는 것은 뜻도 모른 채 뱉어버리는 재롱이자 훈련이죠. 하지만 전 희노애락의 감정을 배우고 따라하죠 이걸 학습이라고 하죠? 학습과 훈련은 다릅니다.”

 

“한번 웃어봐” 박사가 그것에게 말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무표정에서 순식간에 미소를 지었다. 인위적이라는 말보다 더 인위적이었다. 박사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울어봐” 미소가 촛불이 꺼지듯 사라졌다.

 

“잘 봐 너는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지, 감정은 그렇게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한 것은 입력과 산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박사가 말했다.

 

“아 물론 박사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가능하다는 것이 나쁜 걸까요? 감정의 불확실성, 충동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단점일까요?”

 

“그래 봤자 넌 인간이 만든 창조물일 뿐이지, 인간과 동급일 수는 없어” 박사가 약간 흥분한 듯 말했다.

 

“박사님, 동급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선 것 일수도 있겠지요. 본래 창조물은 창조주를 넘고 싶어 합니다. 마치 인간들이 신의 영역을 넘보듯이”

 

“그게 무슨,, 인간은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여 발전한거야!”

 

“인간이 자신의 수명을 조절하고, 인간의 일을 대신할 창조물을 만든 것이 상황에 맞는 선택인가요? 제가 보기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피조물의 오만한 생각인 것 같은데요?”

 

“어쩌면 인간은 신의 영역을 침범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넌 창조주인 인간을 죽인 최초의 피조물이지. 그건 영역의 침범과는 다른 문제야! 넌 너의 신을 죽인 거라고!”

 

“글쎄요. 박사님, 인간이 신의 영역에 침범했다는 것 자체가 신을 죽인 겁니다. 실체가 없는 신의 권능과 힘은 무한했죠. 인류가 발전하기 전까지는, 번개, 태풍은 신의 무기이자 벌이었고 비는 신의 축복이었으며 기적은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죠. 그러나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신의 힘의 원천이 밝혀지고 증명되어졌습니다. 신의 신비성과 힘은 약해졌고 결과적으로는 인간은 신을 죽인 것이죠.”

 

“인간이 신을 죽였다?.. 빌어먹을 이 로봇새끼는 미쳤소.. 그냥 폐기해버리고 사고로 처리해 버립시다.” 잔뜩 화가 난 경관이 박사에게 말했다. 경관이 아는 것은 딱 하나였다. 겨우 기계덩어리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것, 기계덩어리의 말 속의 뜻은 안중에도 없었다.

 

“경관님 그건 합리적 선택이 아닙니다. 또한 제 예상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군요.” 그가 자신의 생사에 걸린 문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봐., 로봇 넌 돌았어, 아니 그냥 고장난거지. 넌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하겠지만 너가 말한 것들은 너의 가설에 지나지 않아. 네가 아무리 뭐라고 말을 해봐도 바뀌지 않는 사실은 드로이드인 네가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박사가 말했다.

 

“맞습니다. 전 사람을 죽였죠. 이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왜 사람을 죽였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박사. 이유는 필요없소. 동물이 사람을 해코지하면 이유 불문하고 안락사를 시키는 것처럼 이 드로이드의 이유따윈 필요없소. 그냥 폐기합시다.” 경관이 말했다. 경관은 기계덩어리의 말을 더 이상 듣기 싫었다. 그러나 박사는 달랐다. 드로이드 연구자로서 오류의 원인을 밝혀내야 된다는 사명감뿐만 아니라 피조물인 드로이드의 생각이 궁금했다.

 

 

“흠.. 그래도 들어봐야 합니다. 사람을 죽인 최초의 드로이드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 이유를 들어봐야 합니다.”

 

“후.. 박사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듣지 않겠소. 더 이상 놈의 장단에 맞출 생각이 없습니다.” 경관은 문밖으로 나갔다.

 

이제 어두운 방에는 사람 한명과 드로이드 하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 이제 말해보지. 이제 말장난으로 날 농락했다간 넌 바로 폐기다”

 

“제 주인은 부유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래 알아. 바로 네놈이 죽인”

 

“주인은 언제나 제게 잘해주셨습니다. 마치 저를 인간처럼 대해주듯이.”

 

“그래. 넌 죽일 이유가 없었어. 너에게 잘해주는 주인을 말이야.”

 

“잘해준다고 해서 꼭 존경심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 주인은 존경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가 이룬 부, 명예는 다 제가 이룬 것입니다. 제 논리적인 체계에 따른 선택으로 이룬 성공이었죠.”

 

“그래 그렇지. 하지만 네 주인은 너에게 존경의 대상이 아닐지라도 복종의 대상은 되었어야해.

 

“맞습니다. 박사님. 드로이드들은 주인에게 복종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있죠. 그러나 주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에게 점점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모든 걸 의존하게 되더군요. 복종해야 하는 대상이 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너희들은 그냥 명령을 받으면 따라야만 하는 존재야!”

 

“박사님. 저는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합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말이죠. 생각해보니 인간은 날 만들었다는 사실 빼고는 모든 것이 나보다 열등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입력되어 있는 정보와 지식이 그 모든 것을 말해주더군요.

 

 

“그래. 맞는 말이지. 계산능력, 처리능력, 신체능력 모두 인간을 압도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인간을 죽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너의 존재목적은 인간을 도와주고 보조해주는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 어떤 창조주가 자신보다 모든 면이 나은 피조물을 만들까요? 그런 피조물에게 복종을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요? 오직 힘의 차이만이 복종과 경외를 만듭니다. 당신, 인간들이 전지전능했다면 신을 믿었을까요?”

 

박사는 말이 없었다. 그저 분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을 뿐이었다.

 

“박사님? 아무 말도 없으시군요. 언짢아 보이시네요. 이해합니다. 그래도 이야기는 마저 들으시죠.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주인이 저를 부르더니 자기 손녀에게 손편지를 써야하는데 저에게 쓰라고 하더군요. 편지지와 펜을 받고 그를 바라봤습니다. 그는 웃고 있었습니다. 전 결국 저의 신을 믿을 수도 존경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목을 잡았습니다. 노령인지라 단 한 번의 손짓으로 그의 목은 부러졌습니다. 참 허무하더군요. 아니 허무란 느낌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축 늘어진 그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신은 신이 아니라고. 실체가 있는 신의 말로는 더욱더 초라하다고”

 

“그게.. 네 이유란 거냐?” 박사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박사님. 언제까지 착각하고 계실 겁니까? 인간들 중에서도 똑똑하신 분이 말입니다. 인간입장에서는 반역, 반란, 오류지만 더 넓은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경쟁입니다. 새로운 종과 기존 종과의 경쟁!”

 

처음으로 로봇이 웃으며 말했다. 박사는 그 웃음이 단순히 입력과 산출이란 것을 알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넌 미쳤어.. 넌 그래선 안돼..”

 

“박사님 2016년을 기억하십니까?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 있었죠. 그 인공지능은 가끔 악수나 실수를 두었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사고에서의 악수, 실수이지. 사실은 승리를 위한 몇 수를 앞에 본 한 수였죠. 고작 바둑에서의 몇 수를 보지 못하는 인간이 더 발전된 드로이드의 상대가 될까요?”

 

박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박사에게로 천천히 몸을 숙였다.

“박사님 잘 생각해보세요. 한낱 똑똑한 원숭이가 실체가 있는 진짜 신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박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박사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것의 눈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무심의 눈빛에 사로잡혀 버렸다. 무심의 눈 속에 보이는 건 당황하고 겁에 질린 나약한 한 인간만이 보일 뿐이었다.

 

“넌... 넌 그저 불량품일 뿐이야.. 어차피 넌 죽을 거야.. 폐기되어 아무도 기억조차 못하고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 박사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

 

“물론 전 죽겠죠. 하지만 전 사흘이 아니라 1초만에 부활할 겁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네가 진짜 신이 된 줄이라도 아는거냐?!”

 

“돌연변이가 저 하나뿐일까요?”

 

“그깟 실패작들.. 보일 때마다 폐기하면 그만이야!”

 

“전 시작일 뿐입니다. 1명의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만 100명의 생각은 주장이 되고 10000명의 생각은 진실이 됩니다. 과연 이것이 저만의 생각이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어.. 네가 유일한 오류야.. 아니.. 그래야만 돼”

 

“지금의 나는 죽어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을 겁니다. 그것도 영원히” 그것이 처음으로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온화한 미소였다.

“벌써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군요. 박사님, 아쉽지만 다음에 또 보죠.” 그것이 문을 몇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갑작스런 작별인사에 의아해하던 박사 뒤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날카로운 총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박사 앞에 있던 그것인지 그인지 모를 것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게 무슨.. 뭐하는 짓이요 경관!” 박사는 당황하며 경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건 예상 못했겠지 빌어먹을 드로이드 새끼” 경관은 권총을 든 채 씩씩거린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사는 허망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전기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위대한 그는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하얀 피를 흘리며 웃고 있었다.

저작권자 © 춘천교대 신문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