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바람은 아픈 향수를 피어나게 한다.

 

 

 

윤영지

 

1. 돌아와요, 부산항에

 

채영은 고향을 떠난 지 9년이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애미 잡아먹은 년'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은 뒤로 그녀는 아무 미련 없이 자신의 마을을 등지고 돌아섰다. 허약했던 채영의 어미는 그녀를 낳고 나서부터 하혈이 멈추지 않더니 다음날 아무도 없는 새벽에 죽어버렸다. 그날 아침, 채영의 아비가 죽은 아내를 발견했을 때 채영은 차갑게 식은 어미의 가슴팍에서 빽빽 울어재끼고 있었다. 그날부로 채영의 아비는 소주를 병나발로 불고 다녔고 집안의 물건들은 매일 박살이 나거나 자리가 바뀌었다. 아비가 던진 물건들은 방향 없이 날아다녔지만 그의 분노의 화살은 항상 채영에게 조준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18세가 되던 해의 어느 밤, 아비는 잠자던 채영을 더듬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게 아비를 발로 차버린 채영은 순간 긴 세월 알코올에 절여져 쪼그라든 한 노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경멸 섞인 '애미 잡아먹은 년' 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채영은 집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채영은 그대로 청량리발 기차표를 끊었다.

서울의 밤거리는 왁자지껄하면서도 건조했다. 모든 것들이 끈적하게 얽혀있던 그녀의 고향과는 사뭇 다른 질감에 채영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혀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어디선가 철 지난 노래가 흘러나왔다. 채영은 자연스레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아비가 술에만 취하면 음정도 없이 고래고래 부르던 노래였다. 노래를 쫓아가던 채영의 발이 멈춘 곳은 큰 붉은 간판에 '봄 춘春'자가 써진 가게였다. 채영은 멍하니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뱀 눈깔을 한 키 큰 여자가 앉아있었다.

"애는 안 받는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뱀 눈깔을 한 여자가 말했다. 채영은 잠시 서있더니 가지고온 짐을 땅바닥에 던지고 그대로 윗옷을 벗었다. 뱀 눈깔은 담배를 빨며 채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채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입고 있던 치마를 내렸다. 뱀 눈깔은 채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더니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고 말했다.

"들어와."

그리고 채영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가게에서 몸을 팔며 살았다. 이곳에서 채영의 이름은 ‘동백’이었다.

채영은 여기서 지내는 동안 고향 생각은 정말로 한 끗만큼도 한 적이 없었다. 할 수가 없기도 했다. 돈은 생각보다 쉽게 모이지 않았고, 그래서 채영은 더 열심히 스스로를 팔아 돈을 모아야했다. 가게에서 '엄마'라 불리는 뱀 눈깔은 여자들이 번 돈에서 60%를 떼어갔다. 그러니 돈 모으기는 더 어려웠다. 그렇게 매일매일 남자들의 품에 안겨가면서 모은 돈은 가게에 온지 9년째가 되자 5000만원 가까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다면 채영은 가게를 나가 작은 과일가게를 차리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나간다고 하면 '엄마'가 순순히 보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채영 이전에도 돈 모아서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이 말을 꺼내자마자 '엄마'와 크게 싸웠고, 그렇게 싸우고 뛰쳐나간 사람들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보나마나 '엄마'가 수를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나간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로 돌아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원래 가게에 있었을 때보다 더 낮은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그런 사람들을 숱하게 봐온 채영으로서는 자신의 꿈을 그저 가슴속에 품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채영은 그렇게 매일매일 다른 남자의 향을 몸에 바르며 돈을 모았다. 시멘트 냄새, 소주 냄새, 막걸리 냄새, 담배 냄새, 땀 냄새, 고급 향수 냄새, 비누 냄새, 불 냄새. 채영의 몸에는 그 모든 냄새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가게 春에 오는 남자들은 채영을 썩 좋아했던 것 같았다. 냄새를 맡아보면 알았다. 채영이 손님을 받는 방은 조명이 어두워서 눈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손님 중에 냄새가 겹치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1주일에 한번은 가게에 꼭 들러서 채영의 몸을 스쳐갔다. 그렇게 특정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채영의 연인이라도 된 양 굴기 시작했다. 악세사리를 사오거나, 돈을 줄테니 나가서 자기와 같이 살자고 말하거나, 다른 남자 말고 꼭 자신하고만 자야한다고 말하거나, 어떤 순진한 남자는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와서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님들이 하는 짓거리가 ‘그 정도’가 될 때쯤이면, 채영은 그 손님들을 조금씩 피했다. 처음에는 몸이 안 좋다, 생리중이다, 따위의 작은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그들과의 자리를 피했고, 그래도 이들의 집착이 계속되면 ‘엄마’에게 살짝 말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귀띔을 해놓으면, 그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가게에 오지 않게 되었다. 채영은 그 이후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딱히 없었다. 그냥 그렇게 귀찮은 것들이 제거되고 나면 채영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냄새를 가진 사람들을 받아 몸을 섞었다.

채영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채영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창녀가 신념을 가진다는 것을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채영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고 그 철학에 따른 신념 또한 있었다. 채영은 자신의 직업이 단지 외로운 사람의 욕구를 해소해주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욕구를 해소해주는 것 이상은 자신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받아주는 그 순간부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들의 욕구를 해소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그들의 일상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채영은 남자를 믿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채영은 남자를 믿을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마치 예쁜 은박 포장지와 같아서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에 상관없이 그 물건을 반짝거리고 예쁘게 만들어버린다. 그 포장지만 보고 섣불리 그 물건을 소유했다가 정작 그 포장지가 뜯어지면 안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물건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채영이 보기에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게 딱 그 꼴이었다. 예쁘고 화려한 반짝이 포장지에 싸여진 음식물쓰레기. 채영은 그런 선물은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채영이 남자를 믿지 못하게 된 원인에는 아비인 ‘술개’의 영향이 가장 컸다. 채영에게 남성은 고통과 폭력, 억압의 형상화였다. 생각해보면, 그런 채영이 남자와 몸을 맞대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채영은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손님들을 받았고, 그 하루도 다른 날과 별 차이 없이 흘러갔다.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왔고, 채영의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채영이 웬만해서 처음 만났던 손님을 기억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 손님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채영이 몸을 씻고 나와 침대를 정리하고 있을 때 그 손님도 채영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은 어두웠지만 채영은 그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등골에 바싹 소름이 돋았다. 옅은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반짝인다기보다 번뜩이고 있었다. 마치, 맹수의 안광이었다.

“저, 몸만 말리고 할게요. 괜찮으시죠?”

“그러시죠.”

건조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방 안의 온도가 2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 채영은 가까스로 수건을 집어 올려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 때문에 목구멍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물기를 다 말린 후 채영은 다시 뒤돌아섰다. 그 손님은 처음 들어온 그 자세 그대로 꼿꼿이 서있었다.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며 채영은 침대에 가 앉았다. 손님은 문 앞에 선 그대로 고개만 돌려서 침대에 앉은 나체의 채영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기본 코스는 칠 만원이구요, 입으로 하는 것까지 하면 십 만원이고, 뭐......원하시면 뒤로도 해드려요. 대신 추가요금 오 만원 더 붙고요. 아, 콘돔은 꼭 끼셔야 하구요, 키스는 안 돼요.”

손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채영은 침대에 잠시 앉아있었다. 어찌해야할지 모를 이 어색함. 채영은 이렇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채영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끈적한 침묵이 이어졌다.

"안 하실 건가요?"

침묵을 걷어내고 싶어서 던진 말이 그대로 힘없이 그 둘 사이에 떨어져버렸다.

"채영."

순간 채영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가슴 속에서 무거운 추가 쿵, 떨어졌다. 배가 꾹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채영은 가빠지는 호흡을 붙잡고 대답했다.

"저는 채영이 아니라 동백인데요."

"알아, 채영."

채영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남자가 한 발짝씩 다가왔다. 바닥에 깔린 두꺼운 카펫에 구두 신은 발을 디딜 때마다 작게 부스럭 소리가 났다.

“......당신 누구야?”

남자는 답이 없었다. 그 남자는 계속해서 채영에게 걸어왔다. 맹수의 눈빛이 채영의 눈에 계속 달라붙어 있었다. 채영은 점점 무서워졌다. 채영은 얼굴은 돌리지 않고 천천히 팔을 뻗어 침대 옆 선반에 있는 호출벨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남자가 채영의 팔을 낚아챘다. 채영은 겁에 질린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채영은 처음으로 남자의 온전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상우?”

2. 처음

 

동백리는 작은 동네였다. 담벼락을 붙여 살던 집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사정이 없었고,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겨주며 살았다. 그런 동백리에서도 딱 하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채영 아비의 술주정이었다. 술만 들어가면 짐승이 되어버리는 그 인간을 동네사람들은 '술개'라고 부르며 되도록이면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채영의 아비는 동네 투전판이니 술집이니 잔칫집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면서 술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가 기어코 술을 받아먹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퍼마신 '술개'의 집에서는 밤마다 물건이 부서지고 집이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채영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상우는 그 '술개'의 집과 담벼락을 나눠 쓰는 사이였다.

상우와 채영은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다.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로 알게 된 것은 7살 무렵이었다. 상우는 읍내에 살다가 초등학교 선생인 아버지를 따라 동백리로 오게 됐다. 그렇게 이사 온 집이 바로 채영의 옆집이었다. 상우는 처음에 그 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겉만 보면 딱 그랬다. 난장판이 된 부엌, 마당에 한쪽에 거의 바닥과 한 몸이 된 닭장, 나돌아 다니는 깨진 술병, 오물 투성이의 벽까지. 상우가 사람이 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댓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더러운 운동화와 낡은 여자애의 구두를 봤을 때였다.

상우가 이사를 온 뒤 채영을 처음 본 곳은 동백리를 가로지르는 개울가였다. 채영은 개울가에 서서 자신의 몸보다 긴 막대기로 물을 휘젓고 있었다. 개울에 물고기를 잡으려고 나온 상우는 채영이 물을 휘젓고 있는 것을 보자 괜히 화가 났다.

"야, 그렇게 하지 마. 물고기 다 도망가잖아."

상우가 채영의 옆으로 다가서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영이 상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왼쪽 눈이 시커멓게 부풀어 올라 눈가에 피고름이 맺혀있었다. 반면에 떠진 반대쪽 눈은 동그랗고 예쁜 모양이었고, 동공은 정말 새카만 색깔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색.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런 눈동자 하나가 상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우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굳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서서 채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순간, 무엇인가 물에 풍덩 던져지는 소리와 함께 상우는 정신이 들었다. 채영이 막대기를 물에 던지고 달려가 버린 것이었다. 상우는 그렇게 채영이 사라진 뒤로도 한동안 그 개울가에 서 있었다. 까마귀가 울부짖으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날부터 상우는 매일 개울로 놀러갔다. 채영도 매일 개울에 나와 있었다. 둘은 물에 돌을 던지면서 놀거나, 막대기를 부딪치면서 싸움놀이를 하거나,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채영의 얼굴에는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고 상우는 그런 채영이 안타까워 집에 있는 간식을 가져가 채영과 같이 먹었다. 그러나 상우는 그때까지도 채영이 자신의 옆집에 사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여름밤이었다. 상우의 옆집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날아간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와 여자애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냥 귀를 틀어막거나 외면해버렸을 상우는 그날따라 유난히 호기심이 돌았다. 상우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옆집 대문 옆 담벼락에 몰래 섰다. 그리고 반쯤 열린 대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그 안을 살짝 엿보았다. 순간 그 집의 방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면서 조그만 여자애 하나가 마당으로 튕겨져 나왔다. 채영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영은 부들거리며 대문 쪽으로 기어왔다. 시커먼 방안에서 욕지거리와 함께 술병이 날아왔다. 날아온 술병은 채영의 얼굴 바로 옆에서 깨졌다. 채영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리고 떨었다. 상우는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있었다.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가슴이 튀어나올 듯이 아프게 두근거렸다. 잠시 주변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고요는 어색하다 못해 이질적이었다. 마치 온 동네가 사라진 것 마냥 조용했다. 상우는 자신도 모르게 쓰러진 채영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채영이 고개를 들었다. 채영과 상우의 눈이 마주쳤다. 채영의 검은 눈은 피로 엉겨 붙은 머리카락에 가려져도, 검은 여름밤에 묻혀도 처음 본 그 빛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상우는 채영의 앞에 조용히 쭈그려 앉았다. 채영이 부들거리는 손을 상우에게 내밀었다. 상우는 천천히 채영의 손을 잡았다. 둘은 잠시 동안 그러고 있었다. 이윽고 상우는 팔에 힘을 줘 채영을 일으켰다. 채영은 한쪽 다리를 절뚝였다. 아무래도 날아든 밥상에 맞은 듯했다. 상우와 채영은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개울가의 둔덕 뒤로 들어갔다. 그 둔덕은 둘이 같이 꼭 붙어서 아래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은 절대 둘을 보지 못하는, 그래서 둘만의 비밀장소였다. 상우와 채영은 그 아래에 들어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싹둑 하고 반으로 잘린 달이 하늘에 걸려있었고,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바람이 개울 위에서 불어왔다. 산 속에서 나무들이 바람에 가지를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둘은 그 소리들 사이의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별안간 채영의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마치 이전에는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사람처럼, 채영은 그렇게 섧게 흐느꼈다. 주위를 둘러싼 빗방울 소리 사이로 채영의 울음소리가 조용히 섞여 들어갔다. 상우는 그런 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채영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얇고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어깨가 상우의 품에 들어왔다. 채영은 그렇게 그곳에서 밤새도록 흐느꼈고 상우는 그렇게 채영의 어깨를 끌어안고 밤새도록 옆에 앉아있었다. 유달리 조용한 밤이었다.

그날부터 그 둘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비가 오는 날도, 해가 맑은 날도, 눈이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낮도, 밤도. 어느 곳에서든지 둘은 함께였다. 채영은 ‘술개’가 지랄을 떠는 밤마다 도망쳐 나와 개울가 둔덕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상우가 항상 앉아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채영은 ‘술개’ 때문이 아니더라도 둔덕으로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같이 붙어있는 만큼 둘의 마음은 자연스레 커져갔다. 둘은 항상 서로의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손을 잡았고,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처음으로 입을 맞췄다. 그렇게 그 둔덕 아래에는 그들의 처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채영과 상우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채영은 상우에게 말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었다.

3. 향수香水

 

“......상우?”

채영은 다시 한 번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채영의 팔을 잡은 남자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상우니?”

남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상우야? 상우 맞아?”

남자가 고개를 떨궜다.

“알아보는구나.”

침묵 끝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못 알아볼 줄 알았어.”

하, 채영은 헛웃음이 났다. 채영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건조한 침묵이 시작됐다.

“잊었어.”

채영의 한 마디가 침묵을 깨뜨렸다.

“마을을 떠난 뒤로 네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채영이 상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네 생각뿐만 아니라 그 망할 동네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상우가 고개를 들었다.

“팔 좀 놔줄래?”

상우가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왜 찾아온 거야?”

상우가 채영의 옆에 앉았다. 순간 채영은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한기가 느껴졌다.

“아니 그보다......너 여길 어떻게 찾아온 거야?”

상우가 고개를 돌려 채영을 쳐다보았다. 채영의 눈이 의구심으로 흔들렸다. 분명 자신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곳에 왔을 텐데, 상우는 도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지.

“연어는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대.”

상우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냄새를 기억한대. 그래서 아무리 먼 바다로 나가서 10년 가까이를 지내도, 그 길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래.”

채영은 이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난 늘 믿고 있었어. 네가 언젠가는 다시 그 개울가로 돌아올 거라고.”

채영은 고개를 돌렸다. 선반 위에 담배 한 갑이 놓여있었다. 채영은 가게에 들어오고 나서 언니들에게 담배를 배웠다. 채영은 담배 한 개피를 집어 들어 불을 붙였다. 장막 같은 연기가 천천히 침묵을 채웠다.

“나한테 고향 따위는 없어.”

채영이 공중에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나는 다 잊었어. 깨끗이 털어버렸어. 그 집은 나한테 지옥이야. 술에 취한 음탕한 개새끼가 주인인 시커먼 지옥.”

상우가 나른한 연기 사이로 채영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얼굴에 상처는 없네.”

상우가 말했다. 채영은 잠시 담배를 손에 쥐고 상우를 쳐다봤다. 그제야 채영은 상우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다. 채영의 기억 속에 있는 상우는 말끔한 얼굴에 작지만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코와 꽤 컸던 귀, 잉크로 깨끗하게 그린 것 같은 눈썹, 숱 많은 까까머리. 그러나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상우는 꽤나 달라진 모습이었다. 오른쪽 눈가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긴 흉터부터가 그랬다. 선이 진해진 얼굴과 며칠 깎지 않은 듯한 수염, 검게 탄 피부까지. 딱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은 그 눈이었다. 채영은 어쩌면 그 눈 때문에 이렇게 변한 상우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빛나는 눈. 그러나 그 빛은 그때와 달리 서늘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채영은 상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유난히 담배가 썼다.

“많이 변했네.”

채영이 고개를 돌리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많이 변했지.”

상우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채영은 고개를 돌려 그런 상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상우의 등이 저렇게 넓었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래. 나도 많이 변했는걸.”

채영이 다리를 꼬았다. 문득 채영은 상우의 기억 속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했다. 상우는 내가 많이 변했다고 해줄까. 아니면 그대로라고 해줄까. 상우가 고개를 들어 채영을 쳐다보았다.

“안 변했어.”

상우가 말했다. 채영이 담배를 비벼 껐다.

“어떻게 나를 찾은 거야?”

상우가 시선을 피했다. 둘 사이를 다시 침묵이 에워쌌다. 그때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상우는 말없이 일어나 걸어 나갔다. 채영이 나가는 상우의 팔을 붙잡았다.

“말해줘.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야?”

상우는 잠시 채영을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코팅된 정사각형 종이 한 장을 꺼내 채영에게 건넸다. 단발머리 소녀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열여덟 살 시절 상우의 기억 속 채영이 그 그림 속에 들어있었다.

“이거 하나 들고 모든 곳을 찾아다녔어. 시골 다방부터 서울의 레스토랑까지, 네가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지고 다녔어.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곳까지 와 본건데, 여기서 너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거야.”

채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우는 뒤돌아서 그대로 나가버렸다. 인사도 없이,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가버렸다. 채영은 그림을 손에 들고 그렇게 나가는 상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서있었다. 방 가득하던 담배연기가 열린 문으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마치 상우가 가져온 오래된 고향의 향기가 빠져나가듯이.

4. 연기煙氣

 

채영은 그렇게 사라졌다.

상우는 채영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채영이 사라진 다음 날 상우는 여느 때처럼 둔덕 아래에 앉아있었다. 달도 뜨지 않은 까아만 밤이었다. 숲속도 조용했다. 상우는 샛별이 산마루 위에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채영은 오지 않았다. 물론 채영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상우는 채영이 아파서 나오지 못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상우는 곧 툭툭 털고 일어나 집 쪽으로 걸어갔다. 채영의 집 앞에 잠시 서서 대문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상우는 담벼락 옆에 핀 동백꽃을 꺾어 대문 앞에 살짝 내려놨다. 그리고 부모님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하루가 더 지나도 채영은 보이지 않았다. 문 앞에 내려놨던 동백꽃은 누군가의 발에 밟혀있었다. 상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술개’의 집이 너무 조용했다. 채영이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그 ‘술개’가 얌전히 앉아 아픈 딸을 간호할 인간은 아니었다. 아파서 누워있더라도 발로 차던지 밥상을 집어던지던지 무슨 지랄을 해서라도 채영을 괴롭힐 인간이었다. 그래도 상우는 ‘혹시 모르니까’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날 밤에도 상우는 냇가에서 채영을 기다렸지만 채영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술개’의 집은 그 다음날도 조용했다.

하루 이틀이 더 지나고 참다못한 상우는 채영의 집을 찾아갔다. ‘술개’는 집에 없었다. 문을 살며시 열고 채영의 집을 들어간 상우는 댓돌에 채영의 신발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머리 뒤쪽이 욱씬 했다. 상우는 마당을 한 번 휙 돌아봤다. 무너지기 직전인 닭장도 그대로였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깨진 술병들도 그대로였다. 직감적으로 상우는 채영이 결국 떠나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채영은 종종 상우의 품에 안겨 울면서 언젠가 이곳을 떠나버릴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상우는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지,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상우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둔덕으로 달려갔다. 둘이 항상 앉아있던 자리는 여뀌풀이 눌린 모습 그대로였지만 채영은 거기 없었다. 상우는 그날 하루 종일 동백리를 돌아다니며 채영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채영의 흔적은 동백리 어디에도 없었다. 며칠을 계속해서 찾아다니고 나서야 상우는 채영이 아주 떠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올 거야.

상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매일 둔덕에 앉아 채영을 기다렸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 날 ‘술개’가 죽었다. 채영이 사라진 후에도 ‘술개’는 변함없이 동네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거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술을 얻어먹고 행패를 부리고 다녔다. 여느 때와 같이 동네 투전판에서 막걸리를 마신 ‘술개’는 또한 여느 때와 같이 지랄을 떨기 시작했고, 투전꾼 한 명과 시비가 붙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었다. 주먹다짐이 오갔고,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평소 같으면 말렸을 동네 사람들도 이번에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들 ‘술개’의 지랄에 질려버린 탓이었다. 채영이라도 있었다면 ‘애 볼까 두렵다’, ‘채영이 생각해서 이러지 말라’ 따위의 핑계로라도 말렸겠지만, 이제 채영이 없는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해졌다. 그러다 ‘술개’가 술병을 집어 들어 싸움꾼을 내리쳤고 이윽고 싸움꾼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본 싸움꾼은 꼭지가 돌아버렸고 앞에 있던 술상을 집어 들어 ‘술개’를 미친 듯이 패기 시작했다. 늙어 몸이 약해진 ‘술개’는 저항할 힘이 부족했다. 결국 ‘술개’는 바닥에 넘어져버렸고 ‘술개’를 패던 술상이 부서지자 싸움꾼은 술병을 집어 들어 다시 패기 시작했다. 이젠 좀 지나치다 생각했는지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보다 못한 한 사람이 달려들어 싸움꾼을 떼어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제야 싸움꾼을 ‘술개’에게서 떨어뜨렸다. 겨우겨우 싸움꾼을 진정시켜놓은 다음 사람들은 천천히 ‘술개’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싸하고 축축한 정적이 사람들 사이에 맴돌았다. 사람들은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 싸움꾼을 말리려 달려든 사람이 ‘술개’의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곧 손가락을 뗀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죽어버렸구만.”

그 유명했던 ‘술개’는 그렇게 죽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술개’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집 뒤편에 있는 작은 마당에 묻어주고 작은 비문을 만들어줬다. 비문에는 ‘주사酒士’ 두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한때 같은 마을 사람이었던 이들의 조롱과 위로가 섞인 선물이었다.

‘술개’의 장례식은 흡사 마을의 잔칫날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 좁은 집마당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왁자지껄하게 술을 퍼마셨고, 마을의 아낙들은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날랐다. 마을의 구성원이 죽었다는 슬픔도 잠시,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는 듯이,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이 서로 즐기고 놀았다. 아주 가끔 어색하게 슬픈 공기가 돌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건배를 하며 그 공기를 날려버렸다. 어찌 보면 매우 기이한 모습이었다. 낡은 집 방 한 켠에 ‘술개’의 관짝이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마당에 나앉아있었다. 누구는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누구는 조임줄이 다 늘어난 장구를 치고, 누구는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막걸리에 취해 막말을 지껄이고, 누구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누구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누구는 음식을 나르는 과부에게 추파를 던지며 치근거리고, 누구는 소란을 틈타 옆집 창고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고, 누구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토론을 하고......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버린 동백리는 ‘술개’의 죽음이 가져다준 오래간만의 왁자지껄함으로 잠시나마 옛날의 활력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상우는 ‘술개’의 장례를 치르는 이 모든 과정에 같이 있었다. 혹시나 아비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지도 모를 채영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물론 채영이 소식을 들었다는, 또 소식을 듣고 나서 동백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었지만 그래도 상우는 혹시나, 혹시나, 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역시나 채영은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동백리는 그날 이후로 채영을 영영 지워버리게 되었다.

‘술개’가 그렇게 죽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우의 아버지가 다른 지역 학교로 발령이 났다. 상우네는 이사를 해야 했고, 곧 동백리를 떠났다. 떠나기 하루 전, 상우는 개울 옆 둔덕에 잠시 들렀다. 와주는 사람이 없어진 둔덕에는 풀이 무성했다. 둘이 같이 앉아있던 곳에는 여뀌가 한가득 자라있었다. 상우는 여뀌를 눌러 밟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둔덕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숲속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꼭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하늘에는 은고리 같은 초승달이 떠있었다. 개울이 졸졸졸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습하고 뜨뜻했다. 상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상우네는 포항의 중심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발령이 난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철소를 들어갔다. 자신이 원해서 들어간 것이었다. 상우의 아버지는 상우가 대학을 가고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상우는 완고하게 제철소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상우를 몇 번 설득했지만 상우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제철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그날로 상우는 제철소로 가서 일자리를 구했다. 상우는 용광로가 있는 곳에 배치 받았다. 제철소 일은 고된 일이었다. 용광로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피부는 붉게 탔다. 달아오른 공기와 쇳물에서 나오는 증기 때문에 폐 깊은 곳까지 증발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뼛속까지 녹아내리게 만드는 열기도, 미친 듯이 기침을 하게 만드는 증기도 상관없었다. 상우는 제철소 일을 하면서 동백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쇳물과 함께 녹아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술개’도, 그 개울가도, 채영도. 그러나 쇳물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채영에 대한 생각을 더 뜨겁게 달굴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달궈진 채영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더 상우의 몸을 미치게 만들었다. 상우는 일이 끝나면 인부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취해 인사불성이 된 채로 포항 시내의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혹시나 여기에 채영이 있을까. 상우는 이때부터 술만 마시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뜨겁게 달아오른 채영의 생각은 상우의 몸을 이리저리로 끌고 다녔고, 상우는 그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녔다. 음식점, 술집, 룸살롱, 찻집, 다방, 심지어 노숙자 보호소까지. 채영은 없었다. 상우의 몸은 점점 더 미쳐갔다.

그렇게 떠돌던 어느 날이었다. 상우는 호미곶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관광객들이 좀 보였고, 그렇게 관광을 온 연인들을 위해 길거리 화가들이 캔버스를 들고 나와 있었다. 상우는 그 모습들을 그냥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상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우는 멀찍이 있는 한 화가에게 걸어갔다. 주위에 몇 점의 캐리커처들이 걸려있었고, 캔버스에는 ‘한 장에 1000원’이라고 써져 있었다. 상우는 지갑에서 1000원 지폐를 꺼내 화가에게 내밀었다.

“그려드려요?”

화가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저 말고 그려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데?”

“그게......얼굴을 제가 설명해드리면 그려주실 수 있습니까?”

“뭐......안 될 거야 없는데. 자세하게 설명하셔야 돼요.”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화가가 상우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짝사랑 하는 거요?”

“그려주시죠.”

“흠......그래 뭐 그려드리죠. 일단 거기 앉으세요.”

상우는 화가의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화가가 4B연필을 집어 들었다. 상우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화가의 손은 상우가 설명하는 모습을 그대로 종이에 그려냈다. 흰 피부, 까맣고 동그란 눈, 오똑한 코, 짧은 검은 단발머리, 얇은 목, 약간은 큰 입, 왼쪽에만 있는 보조개, 눈썹 아래의 점까지. 상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채영의 얼굴이 종이 위에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화가는 능숙하게 그림을 그려나갔고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그림은 거의 완성이 되어있었다.

“채색까지 하면 500원 추가인데, 어떡하시겠습니까? 채색까지 해드려?”

상우는 고민 없이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채색이 들어가자 종이 위의 채영은 정말로 상우 앞에 살아있는 듯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그림은 완성되었다. 상우는 그림을 받아들고 곧장 문방구로 달려가 코팅을 했다. 코팅되어 나온 그림을 상우는 한동안 들여다봤다. 쇳물의 열기가 살려낸 채영의 기억이 그림에 그대로 번져 나왔다. 상우는 채영과 개울가 둔덕에서 했던 첫 입맞춤이 기억이 났다. 구름에 달이 가린 밤이었다. 그 탓에 주변이 온통 캄캄했다. 둔덕에 앉아있으니 물 흐르는 소리만 잔잔히 들렸다. 채영과 상우는 손을 꼭 붙잡고 나란히 앉아있었다. 채영의 볼에는 이틀 전 ‘술개’에게 맞은 멍이 아직 푸르게 남아있었다. 하얀 채영의 피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났다. 상우는 채영을 바라보다 멍이 남아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채영이 아팠는지 움찔 했다. 그래도 피하지는 않았다. 상우와 채영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둘의 얼굴이 서로에게 다가가다가 멈칫 했다. 사이에 종이 한 장만 들어갈 정도의 틈이 남아있었다. 채영은 눈을 감고 있었다.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상우는 눈을 감고 채영에게 입을 맞췄다. 보드라운 채영의 입술이 상우의 입술에 닿았다. 둘은 잠시 그렇게 입술을 포개고 가만히 있었다. 채영이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상우도 채영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서툴렀다. 마치 처음 쓰는 근육을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하고 뻣뻣했다.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고개를 돌리는 것도, 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도 다. 그래도 밤은 길었고, 어두웠고, 깊었다. 어둠속에서 둘은 더 섬세해졌고 예민해졌고 곤두섰다. 서로를 만지고, 서로를 느끼고,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갔다. 그 밤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갔다.

바닷바람이 가만히 서있던 상우의 정신을 흔들고 지나갔다. 상우는 소매로 얼굴을 닦아내고 그림을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달궈진 생각이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상우는 모자를 눌러쓰고 황급히 걸어갔다.

5. 뒷모습

 

채영은 열린 문을 닫은 뒤 침대로 돌아와 앉아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채영은 오늘만 일을 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채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머리 아픈 일이 있었다.

채영이 동백리를 떠난 이후로 상우의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매일 상우 때문에 그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었고, 매일 밤 상우의 생각 때문에 몸이 미쳐갔다. 자신의 몸은 매일 다른 남자의 몸을 받아야 했지만, 채영이 원하는 것은 상우의 몸이었다. 그 둔덕에서 항상 자신과 붙어있던 상우의 몸이 그리웠다. 상우가 그리웠다. 당장이라도 상우가 저 문을 열고 달려와서 자신에게 입을 맞춰주었으면 했다. 채영이 동백리를 떠난 이후로 상우는 분명히 자신을 찾아다녔을 것이었다. 낯선 남자 아래에서 흔들리며 채영은 속으로 끊임없이 상우를 불렀다. 지금 여기 있다고, 그러니 당장 달려오라고, 나를 찾아오라고. 그러나 부르고 불러도,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상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상우가 아니라 다음 손님이었다. 가게에서 제일 어렸던 채영을 손님들은 많이 찾았다. 채영은 끊임없이 손님을 받아야 했고, 그렇게 채영의 몸에 다른 남자들의 향이 쌓여가는 것과 동시에 상우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밀려나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며 채영은 결국 상우에 대한 미련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편이 채영의 생활에 더욱 도움이 되었다. 채영의 생활은 바깥의 기억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이름을 바꿨다는 것 자체가 이전의 바깥 생활과 아예 상관이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가게의 여자들은 ‘엄마’의 소유물이었다. ‘엄마’는 여자들이 바깥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드러낼 때마다 가혹한 체벌을 했다. 이곳에서는 돈을 빼돌리는 것보다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 더 큰 죄였다. ‘엄마’의 논리는 그랬다.

‘제 발로 지하에 기어들어온 년들에게 과거를 그리워할 권리 따위는 없다.’

그에 따라 여자들은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었고, 외출을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엄마’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가드를 동반한 두 시간의 외출이 가능했다. 외출을 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가게에 500미터 이상 떨어지지 말 것, 가드와 떨어지지 말 것,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말 것, 주어진 돈 외의 지출을 하지 말 것, 해가 지기 전에는 들어올 것, 먹을 것을 사들고 오지 말 것. 이런 제약들은 그나마 자유가 보장된 외출시간에도 여자들을 감시했다. 이것들 중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즉시 가드에게 붙들려 가게로 끌려들어가야 했고, 그 뒤로 3번의 외출이 금지되었다. 한 마디로, ‘바깥’이라는 것은 가게의 ‘안’과 철저히 분리되어야만 했다.

“너희는 너희 스스로 밖을 버리고 어둠으로 도망친 년들이야. 어딜 감히 버린 걸 다시 가지고 기어들어와? 너희가 그럴 자격이나 있어?”

언젠가 채영이 규칙을 어기고 가드를 따돌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 들어온 날, ‘엄마’가 채영을 가죽 채찍으로 후려치면서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그날 채찍에 난 상처와 같이 채영의 몸 속 깊숙이 새겨졌다. 채영은 그날 이후로 바깥에 대한 생각은 정말로 저버렸다. 아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았다. 채영은 바깥의 빛을 지하의 어둠으로 끌고 들어오기보다, 스스로 지하를 벗어나 바깥으로 걸어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둠을 완전히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지금 더욱 어둠에 잠겨야했다. 동 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그때부터 채영은 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매일 밀려오는 손님을 몸으로 받아냈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채영의 이후에도 들어온 여자는 많았고, 채영처럼 돈을 모아서 가게를 나간 여자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로 돌아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가게에서 썩어나갔다. 채영은 그런 여자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확실히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워나갔다. 어떻게 하면 확실히 이곳과 손을 끊고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나가서도 아무 문제없이 잘 자리 잡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러던 중, 상우가 찾아온 것이었다.

채영은 손에 들려있는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림에 자신의 풋풋한 사춘기 시절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코팅이 누렇게 변해 있었고, 가장자리는 날카롭기는커녕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웠다. 도대체 이 그림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했을까. 아니면 상우가 그렸을까. 채영이 알고 있는 상우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을 것이었다. 상우의 기억 속 채영은 저 모습이었다. 사춘기의 소녀. 채영은 화장실로 걸어가 세면대 앞의 거울을 보고 섰다. 거울 속에 서 있는 채영은 그때와 많이 변해있었다. 머리는 단발이 아니라 긴 생머리였고, 얼굴은 더 갸름해져 있었다. 얇고 약간은 뻣뻣했던 몸은 이제 유연한 곡선들이 채우고 있었다. 채영이 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동그랗고 까만 눈과 코와 보조개였다. 채영은 거울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상우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고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 걸까. 눈이었을까, 코였을까, 보조개였을까. 채영은 다시 침대에 돌아와 털썩 누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과거의 향수가 얇아진 기억의 막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동백리, 산, 빗소리, 개울가, 둔덕, 집, 그녀의 아비, ‘술개’. 채영은 손을 더듬어 담배를 찾았다. 딱 한 개비가 남아있었다. 채영은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담배를 입에 문 다음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엄마’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채영은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까 그 남자, 뭐니?”

‘엄마’가 재차 물었다. 채영이 담배연기를 훅, 내뱉은 후 대답했다.

“고향 친구.”

“갑자기 왜 오늘은 쉬겠다고 한 거야? 내 말도 끝까지 안 듣고 전화를 끊어버리질 않나. 저 고향 친구인가 뭔가 때문에 그래?”

“그런 거 아냐. 그냥 몸이 안 좋아. 오늘 하루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게요.”

‘엄마’가 미심쩍은 듯이 채영을 바라보았다. 채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고 엄마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 가?”

“담배.”

“꼴초년 같으니라고.”

채영은 뒤돌아서 ‘엄마’ 보란 듯이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이거라도 안 피면 죽어버릴 것 같거든.”

자판기에서 담배를 꺼낸 채영이 ‘엄마’를 지나쳐 방에 들어가다가 그 앞에 멈춰 섰다.

“아, 엄마, 다음에 내 고향 친구 또 오면 바로 내 방으로 보내줘. 알겠지? 부탁할게.”

채영은 ‘엄마’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손을 살짝 흔들고는 방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사온 담배를 서랍에 던져 넣고 채영은 그대로 침대에 푹 엎어졌다.

“썅, 나보고 어쩌라고.”

6. 바람

 

그림을 받은 이후로 상우는 제철소를 나왔다. 그리고 최대한 전국을 떠돌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어디 있을지 모를 채영을 찾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상우는 인력시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인력시장에 한 달, 이 주, 일 주짜리 막노동 일들이 나오면 어떻게든 따라붙었다. 공사장 철거 작업, 쓰레기 매립지, 석유 공장, 타이어 공장, 유리 공장, 비료 공장 등의 일을 하며 상우는 거의 한두 달 간격으로 도시에서 도시를 건너 다녔다. 낮 시간에는 악착같이 돈을 벌고, 일이 모두 끝난 밤부터 새벽까지는 그림을 들고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채영을 찾아다녔다. 시골의 다방부터, 서울의 레스토랑까지 안 들어가 본 곳이 없었다. 채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모두 들어가 그림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상우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니오, 우리 가게에는 이런 애 없는데.”

“저희 애는 안 써요. 딱 봐도 어려 보이는구먼. 딸이요?”

그렇게 상우는 가는 곳마다 허탕을 치고 나왔다. 상우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상우는 서울의 한 도축 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도축공장 주변에 다방은 거의 없었고, 주로 ‘가게’들이 있었다.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인부들은 생고기 살에서 나는 비린내를 풀풀 풍기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천쪼가리 몇 장만 걸친 여자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상우는 채영이 그런 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혹시나’ 하는 생각을 꾹 눌러놓고 외면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우는 채영이 그런 ‘가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도축공장 주위에도 다방이 딱 하나 있었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아 망하기 직전처럼 보이는 지저분하고 허름한 동네 다방이었다. 상우는 과연 그런 곳에 채영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 며칠은 그 다방을 그냥 지나쳐갔다. 그리고 너무 지치기도 했다. 계속해서 똑같은 대답들만 들으니 과연 채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방이 마음에 조금씩 걸렸다. 사실 채영이 저런 다방에 있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상우는 그 다방을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이 끝난 어느 날 상우는 다방의 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방은 어두침침했고, 안에는 소파 세 네 개 정도와 테이블 네 개가 있었다. 좁았다. 상우는 들어가자마자 있는 가장 가까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카운터에 서있던 뷔스티에를 입은 깡마른 단발머리 여자가 슬금슬금 상우에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오빠네? 뭐 드릴까요? 커피? 쌍화차? 아님 우유라도 데워드려요?”

푼수끼가 다분히 보이는 여자였다. 상우는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서 채영의 그림을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이 여자, 본 적 있어요?”

여자가 그림을 받아들고 상우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이 여자랑 무슨 사이인데요?”

여자가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상우에게 물었다. 상우는 여자에게 간단하게만 설명했다. 같은 고향 사람이고,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랑하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져버려서 이렇게 찾고 있다. 그렇게 사라진지 9년이 다 되어간다. 상우는 이야기를 하다가 새삼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갔나, 하는 생각에 허탈함을 느꼈다.

“오빠 혹시 ‘가게’는 가봤어요?”

상우의 이야기를 다 들은 여자가 한 말이었다.

“가게?”

“그런 여자들 집 나가서 들어갈 곳 뻔해요. 이런 다방 아니면 가게. 만약 오빠가 정말로 다방은 다 가봤다면, 이 언니? 언니 맞죠? 하여튼 이 언니 내 생각에는 가게 들어간 것 같은데.”

“가게......라 하면......”

여자가 피식 웃고 말했다.

“몸 파는 데요. 창녀촌.”

상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저도 시골에서 무작정 서울 올라와서 처음에는 가게 들어갔었어요. 갈 데가 그곳밖에 없더라구. 안 받아줘.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여자가 쿡쿡 웃었다.

“그렇게 가게에서 한 3년 있었나. 그러다가 점점 손님들이 날 안 찾더라구. 점장 말로는 뭐, 사람들 취향이 바뀌었다나 뭐라나. 웃기지 않아요? 지들도 급해서 우리 찾는 거면서 거기서 취향 따지고 있더라니 까요. 아무리 배고파도 지 입맛에 맞는 음식 먹겠다는 거지. 하여튼 남자 새끼들은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있어보여야 된다니까.”

상우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결국 채영이 ‘그런 곳’에 들어갔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었다.

“그렇게 3년 있다가 결국 신입이들한테 밀려서 쫓겨났어요. 다른 가게들도 사정 똑같은지 안 받아주더라고. 그래서 길바닥 구르고 구르다가 이 다방까지 오게 됐어요. 다 옛날 얘기지 뭐. 근데 오빠 커피 한 잔 안할래요? 내가 여기서 커피로는 제일 유명한데.”

상우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더 들을 이야기는 없었다. 이제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았으니, 남은 일은 다시 찾아나서는 것뿐이었다.

“오빠, 그냥 가게?”

“얘기 고마워요.”

상우는 다방 문을 열고 길거리로 나섰다.

“오빠, 이건 챙겨가야지. 언니 찾아야 되잖아?”

상우를 따라 나온 여자가 가지고 있던 그림을 다시 상우에게 돌려줬다. 그림을 다시 받아든 상우는 그림을 안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 공장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빠, 언니 꼭 찾아요!”

여자가 상우의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만약 찾더라도 실망하지 말구.”

여자가 작게 뒤에 덧붙였다.

“실망하지 말라니......”

상우는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늘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7. 아침

 

채영은 어제 엎어진 자세 그대로 일어났다. 10년 전에 가게에 들어온 다음 처음으로 마음 놓고 깊게 잠을 잔 것 같았다. 등허리가 뻐근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정오였다. 새벽 영업은 4시에 끝났을 것이었다. 아침영업은 11시 시작이었다. 채영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알람도 꺼져 있었고, 문 앞에서 성난 채 기다리는 손님도 없었다. 이상하게 채영의 주위만 조용했다. 침대 옆 서랍에 물 한 잔과 포스트잇 하나가 놓여있었다. 일어나면 카운터로 와라. ‘엄마’의 글씨였다. 지금 채영을 둘러싸고 있는 고요는 ‘엄마’의 배려였다. 채영은 처음으로 이 가게에서 포근함을 느낀 것 같았다. 채영은 침대에서 나와 세안을 한 뒤 카운터로 갔다. ‘엄마’가 카운터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좀 낫니?”

채영은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 서서 멋쩍게 물었다.

“뭐야, 오늘 손님 없어요?”

“없기는. 너 어제 이상하길래 그냥 안 들여보냈다.”

“왜, 깨우지. 알람도 꺼놨더만.”

“아픈 년이 손님은 무슨. 그럼 손님도 안 좋아해.”

‘엄마’가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 채영은 피식 웃었다. 손님이 안 좋아한다니. 아프고 싶어도 손님 때문에 못 아픈 다는 말인가.

“푹 잤니? 좀 나아?”

‘엄마’가 다시 물었다. 좀 낫나. 채영은 속으로 생각해봤다. ‘낫다’라는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어제와 똑같았다. 그럼 나은 게 아닌가. 심장 속에 깃털이 들어앉은 것처럼 간질간질 했다.

“괜찮아요.”

채영은 속마음과 다른 말을 던지고 자판기에서 콜라를 한 캔 뽑았다.

“이제 손님 들여보내도 돼요.”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채영은 입가를 슥 닦았다. ‘엄마’가 신문 너머로 채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딸랑, 문이 열렸다. ‘엄마’와 채영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상우였다.

“제가 데리고 갈게요.”

채영이 카운터에 콜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채영을 바라봤다. 채영이 그냥 상우를 내보냈으면 하는 눈치였다. 채영은 모른 척 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상우는 마치 나무토막처럼 끌려왔다. 채영은 상우를 자신의 방 안에 밀어 넣고 문을 쾅 닫았다. 상우는 방 한가운데 뻣뻣하게 서있었다. 채영은 문을 등지고 섰다. 건조한 침묵이 시작됐다.

“날 어떡할 거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상우가 대답했다.

“보자마자 방 안에 밀어 넣고. 어쩌려는 거야?”

채영은 머쓱해졌다. 괜히 상우를 의식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거기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하는 게 더 편하니까.”

상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여기가 더 편하다고?”

채영은 아차, 싶었다. 이 방이 상우에겐 절대 편할 리가 없었다. 사랑했던, 어쩌면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가 몸을 파는 공간. 자신을 그런 공간에서만 볼 수밖에 없는 상우. 채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우가 다시 시선을 바닥에 박고 손톱으로 코트의 겉감을 긁었다. 더욱 건조해진 침묵이 방안을 휘돌았다. 문득, 채영은 잔인한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나를 왜 찾아온 거야?”

“아직도 나를 사랑해?”

움직이던 상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8. 연어

 

상우는 그 다방에서 나온 다음부터 서울 곳곳의 창녀촌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상우가 가게들을 찾아다니면서 알아낸 사실들이 있었다. 첫째, 가게의 여자들은 모두 가명을 사용한다는 것. 둘째, 가게의 포주들은 ‘손님’이 아닌 이상 비협조적이라는 것. 셋째, 가게는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것. 넷째, 가게들끼리는 서로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 이 네 가지 사실들은 상우가 채영을 찾을 때 이전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어려울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상우는 일단 침착하게 서울에 있는 가게들을 하나씩 돌기로 했다. 상우는 공장이 있던 주변의 가게를 먼저 돌았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소득은 없었다. 어떤 가게에서는 소금을 맞으며 쫓겨나기도 했고, 가게를 지키는 덩치들에게 끌려 나가 잔뜩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래도 상우는 그 동네에 있는 가게들을 모두 들어가 봐야 했다. 그러나 이미 서울에는 상우가 짭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게들은 상우가 지나가기만 해도 창문을 닫고 네온사인을 내렸고, 그러기 전에 상우가 달려들어 어떻게든 가게에 들어가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상우는 서울에 있는 마지막 가게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미군부대 옆에 있는 쥐구멍만한 가게였다. 상우가 다가오자 나와 있던 여자들이 피던 담배를 툭 던지고 가게로 황급히 들어갔다. 재수 옴 붙었다는 눈이었다. 상우는 급히 그 뒤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나 입구에서 상우를 맞이한 것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하와이안 셔츠를 빼입은 덩치 둘이었다. 상우는 그대로 덩치들에게 끌려나와 뒷산에서 각목으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 덩치들이 돌아간 뒤에도 상우는 한참을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얻어맞아 돌아가지 않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 지랄을 해가면서 까지 채영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한 일인 듯 채영을 찾아 나선 상우였지만 자신이 왜 채영을 찾아야 하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왜 채영을 찾아야할까.’

비가 떨어졌다. 상우는 엎드려있던 몸을 뒤집어 하늘을 봤다. 구름이 낀 밤하늘은 약간은 붉은 기가 도는 짙은 회색이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얼굴을 때렸다. 상우는 부풀어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왜 채영을 찾을까.’

머릿속에 수 만 가지 생각들이 들어찼다. 이사하던 날, 옆집에서 들리는 와장창 소리와 소녀의 비명소리, 조용한 뒷산, 반쪽짜리 달, 조그맣던 개울가에 핀 여뀌, 물이 퍼지는 파장, 막대기를 잡은 작은 상처투성이 손, 부풀어 검게 변한 눈두덩, 그 속에서 빛나는 검은색 눈, 타타탓 달려가는 발소리, 차갑던 물의 온도, 뿌려지던 물방울, 놀라 도망가던 백로, 산 속에서 울던 까마귀,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 시끌시끌하던 마을 잔칫집, 웃음소리, 소녀의 목소리, 달이 빛나던 밤, 등에 부스럭 닿던 모래 둔덕, 풀이 눌린 자국, 맞잡은 가느다란 손가락, 숨소리, 빛나던 입술, 미끈거리고 부드럽던 감촉, 하얀 피부, 검은 머리카락, 조그만 어깨, 가는 허리, 뜨거워진 볼, 풀이 쓸려 부스럭대던 소리, 맞부딪히던 이빨, 그 사이로 오가던 혀, 조용한 숨소리, 달빛에 부드럽게 피어난 채영의 하얀 피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첫 마주침, 그리고 첫 키스의 기억이었다. 상우의 기억 중 채영이 함께 있는 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채영은 기억의 시작이었다. 채영의 검고 깊은 눈동자가 상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보면 그 눈 때문이었다. 개울가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 빨려 들어갈 듯이 깊고 새카만 눈. 상우는 어쩌면, 그 깊은 검은 눈 속에서 빛을 본 그날부터 채영에게 사로잡혔을지도 몰랐다. 머리가 아파왔다. 잊고 있던 몸의 통증이 돌아오고 있었다. 갈비뼈가 나간 것 같았다.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눈두덩이 뜨거웠다. 서서히 덮쳐오는 통증에 상우는 몸을 웅크렸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와르르 쏟아졌다. 옆에서 흙냄새가 피어올랐다. 순간 동백리의 개울가가 생각이 났다. 그 개울가 옆에 있던 둔덕이 생각이 났다. 그 둔덕에 자라있던 여뀌가 생각이 났다. 상우는 마치 지금 자신이 그 둔덕에 누워있는 것처럼 맥이 탁 풀려버렸다. 여기 있을 리가 없는 개울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들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우는 천천히 윗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산 아래 미약하게 빛나는 집들이 보였다. 상우는 손바닥을 펴 눈앞에 가져갔다. 손에 묻어있던 피와 흙이 빗물에 씻겨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채영을 찾아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채영은 상우의 시작이었다.

아직 채영을 사랑한다.

이게 그 답이었다.

9. 의미

 

“아직 날 사랑해?”

채영이 다시 상우에게 물었다. 상우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 봤을 때의 서늘함이 싹 가신 눈빛이었다. 소년 때의 그 맑은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그 눈물을 본 순간 채영은 가슴이 싸해졌다. 채영은 차가워지는 가슴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이렇게 잔인해지는 자신이 싫었다.

“날 사랑해?”

상우의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네가 떠난 이후로 나는 계속 널 기다렸어.”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상우가 겨우 말을 꺼냈다.

“기다리는 동안 정말 온갖 감정이 다 들었어. 죽을 만큼 슬펐다가, 가슴을 도려내고 싶을 만큼 미웠다가, 머리가 터져버릴 정도로 보고 싶다가, 하루 종일 드는 네 생각에 행복했다가......그렇게 매일매일 정신병자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까 진짜 미치겠더라고.”

“그렇게 나한테 말도 안하고 사라져버린 네가 미웠어. 정말 결국에는 네가 밉더라.”

“한 마디라도 듣고 싶었어.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말 한 마디도 없이 떠나고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내 생각은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 그 작은 동네에서 뭔 일인들 소문이 안 나겠어?”

“그래도 딱 한 마디, 딱 한 번. 딱 그 한 번이 필요했어.”

침묵이 깔렸다. 채영은 차갑게 쿡쿡 쑤시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이걸 놓쳐버리면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상우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를 찾으러 안 가본 곳이 없어. 그러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고.”

“이 눈에 상처 보여? 다른 가게에 들어가서 너 있는지 찾아보려다가 가드가 칼로 그어버렸어.”

상우가 흉터가 남은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덩치들한테 얻어맞은 이후로 정강이뼈가 부러져서 제대로 뛰지도 못해. 갈비뼈는 벌써 몇 대나 부러졌는지 알 수도 없어.”

채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팔로 감쌌다. 한기가 내장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깨지고 부서지고 부러지면서 찾아온 거야.”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어. 너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너를 찾았어. 왜 그랬을까.”

“사실은 네가 밉지 않았다, 뭐 그런 건 아냐. 난 지금도 네가 미워. 앞으로도 계속 미울 거야. 네가 미워.”

채영이 천천히 떨리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상우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채영은 마주친 상우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봤어. 이렇게 미워하는 널 계속 찾아다니는 난 뭘까.”

“하루는 덩치들에게 산으로 끌려와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어. 비가 오더라고. 그날은 진짜 이놈들이 작정하고 패더라.”

“다 끝나고 나서 그렇게 내리는 비 맞으면서 누워있었어. 그때 문득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너를 찾아야하나. 왜 이렇게 해야 할까.”

채영은 떨어지지 않는 상우의 눈을 바라보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상우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침묵이 다시 시작됐다. 둘의 숨소리와 쿵쿵대는 채영의 심장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텅 빈 침묵이었다. 채영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채영은 지금까지 상우가 자신에게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게 된 것이었다. 부서지고 구겨지고 잔뜩 짓밟힌 초라한 길. 그 길이 그렇게 짓밟힌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채영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평생을 사죄해도 모자랄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했냐하면.”

상우가 침묵 사이로 말을 다시 꺼냈다.

“넌 내 시작이었어.”

“내 모든 것의 출발.”

상우가 처음 만난 날 했던 연어 이야기는 채영을 보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상우 자신의 이야기였다.

“아직 널 사랑 하냐고 물었지.”

“널 사랑해.”

채영은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전에도, 아직도, 앞으로도.”

채영은 문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가슴에 얼어붙어 막혀있던 무언가가 깨진 느낌이었다. 가슴 속에서부터 차가운 무언가가 계속 흘러나왔다. 채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흐느꼈다. 상우는 그런 채영을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채영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10. 회귀

 

‘봄 춘春’자가 써진 간판이 달린 가게의 문이 열렸다. 하늘에서 눈이 잔뜩 내리고 있었고, 이미 이전부터 내린 눈 때문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있었다.

“너를 못 잊었어. 아직도 너를 사랑해.”

채영은 한참이 지난 뒤에 상우에게 말했다. 상우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돌아갈 수 없어.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

멀리 간만큼 내가 찾아왔어. 상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못 가.”

채영이 고개를 들며 상우에게 말했다.

“내 시작은 거기 없어.”

채영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채영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진심어린 미소였다. 상우도 자신도 모르게 채영을 따라 살짝 웃었다. 채영을 따라 웃던 상우는 채영에게 더 이상 들을 수 있는 말은 이제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채영의 눈, 입꼬리, 모든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채영의 미소를 보자 상우는 왠지 가슴이 말끔히 비워진 것 같았다. 상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채영에게 원했던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말이든, 상우가 바라던 것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없었다. 그냥 채영 그 자체라면 된 것이었다.

“그래. 안녕.”

상우가 인사했다.

“안녕.”

채영도 인사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 덮인 굴곡들에서 드러나는 음영만이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상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 가득히 냉기가 들어왔다. 상우가 숨을 후우 내뱉었다. 하얀 입김과 함께 머릿속과 가슴속을 가득 채우던, 그 동안 상우를 움직이게 했던, 뜨겁게 달아올라 몸속을 헤집어놨던 ‘그것’들이 상우의 입에서 빠져나갔다. 상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왼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눈이 점점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거리에 발자국을 꾹꾹 찍으며 상우는 걸어갔다. 뿌연 눈발들이 곧 상우의 발자국을 지우고 뒷모습을 가려버렸다.

채영은 침대에 천장을 보며 누워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던 상우의 뒷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아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채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찾아온다는 말도, 찾아오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채영은 상우가 이제 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채영은 상우가 한 말들을 조금씩 곱씹어봤다. 상우는 채영이 자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채영은 정말 오랜만에 동백리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마치 수채화 물감이 도화지에 번지듯이 조각조각 기억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번져나갔다. 어두운 집안, 길가에 핀 빨간 동백꽃, 냇가에 흐르던 물소리, 떠들썩한 장터, 집안 곳곳에서 풍기던 술 냄새, 고함소리, 술병에 얻어맞은 머리 어딘가에서 흐르던 끈적한 무언가, 물건이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들. ‘술개’에게 얻어맞던 기억들이 떠오르자 몸 여기저기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술개’가 휘두른 술병에 맞아서 터졌던 왼쪽 머리, 날아든 밥상에 치였던 오른쪽 옆구리, 옷장에 부딪혔던 왼쪽 어깨, 새끼줄로 몇 번이고 얻어맞았던 등짝......마치 지금 당장 얻어맞은 것처럼 몸의 곳곳에 통증이 일었다. 잠시 번지던 물감들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고통만 남았다. 채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난 통증을 견뎌보려 했다. 아픔과 두려움이 눈가에 맺혀 투툭, 떨어졌다.

그때 다른 색깔의 물감이 한 방울 채영의 머릿속에 떨어졌다. 일렁, 파문이 생겨났다. 어린 상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기억이 터져 나왔다. 개울가에서 처음 만난 것, 둘이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았던 것, 놀다보면 어느새 해가 붉게 물들어있던 것, 밥상으로 얻어맞고 마당에 쓰러져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것, 개울가 둔덕 뒤에서 꼭 끌어안고 밤을 지새웠던 것, 울던 자신의 어깨를 감싸던 팔, 따뜻하고 넓은 가슴, 부드러웠던 입술, 미끄러져 가로지르던 혀, 채영의 몸을 다정히 쓰다듬던 상우의 큰 손, 안겨있으면 미친 듯이 뛰던 가슴, 가쁜 숨, 빗소리 같이 들리던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짓이겨진 여뀌풀에서 피어나던 풋풋한 냄새. 터져 나온 기억들이 채영의 주위를 둘러쌌다. 채영은 휩쓸렸다. 굳게 닫아놨다고 생각했던 채영의 가슴에 상우가 낸 작은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채영은 그대로 눈을 감고 그 틈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갔다.

따르릉.

호출벨이 울렸다. 채영은 웅크린 채로 부스스 눈을 떴다. 옆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에 비해 정신은 맑았다. 채영은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따르릉, 호출벨이 다시 울렸다. 채영은 더듬더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올래?”

‘엄마’였다.

“미안해요. 요즘 매번 폐만 끼치네.”

“됐어. 이제 너 한 달 동안 외출 없을 줄 알아.”

“알겠어.”

“나갔다와. 애들은 안 붙여줄 테니까.”

‘엄마’는 무심한 듯 툭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채영은 수화기를 내려놓다가 수화기 옆에 놓인 쟁반을 발견했다. 쟁반에는 채영이 카운터에 두고 온 콜라가 놓여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채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옷장 한쪽 깊숙한 구석에 놓인 종이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채영이 처음 ‘春’에 왔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이 들어있는 쇼핑백이었다. 채영은 잠시 쇼핑백을 바라보다가 손에 집어 들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 바깥은 이미 깜깜해져있었다. 바닥에 쌓인 눈이 나트륨 가로등의 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냉기가 채영의 옷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채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피어난 입김이 시야에서 공중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깊도록 까만빛이 가득 차있었다. 세상은 조용했다. 몇 시일까. 가로등 빛에 가려서 별이 보이지 않았다. 채영은 가게 앞을 둘러보았다. 풍경은 눈에 덮여 그 실루엣만 드러나고 있었다. 채영은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생각이 났다. 채영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 들었다. 낡고 헤지고 더럽고 구겨진 옷이었다. 잠시 동안 옷을 쳐다보던 채영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로 옷에 불을 붙였다. 오랜 세월을 옷장에 놓여있던 옷은 금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불이 점점 커졌다. 채영의 얼굴에 불의 열기가 느껴졌다. 채영은 타고 있는 옷을 눈 위에 내던졌다. 떨어진 자리에 쌓여있던 눈이 스르륵 녹았다. 옷이 거의 타들어가자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채영은 그 위에 옷이 들어있던 쇼핑백을 던졌다. 불이 다시 타올랐다. 채영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꽁초를 불에 던졌다. 치익, 소리가 났다. 채영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폐 속까지 빨아들였던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가 형체 없이 뭉게뭉게 하늘로 올라갔다. 잠시 그 흔적을 바라보던 채영은 오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나긋하게 울려 퍼졌다.

 

부산 집 화단엔 동백나무 꽃이 피었고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안부를 물어 볼 때면,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죠

거긴 벌써 봄이 왔군요

 

하지만,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눈 비비며 겨울잠을 이겼더니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발 디딜 틈 없는 명동 거리로

그대 살던 홍대 이층집 뜰에

우리 할아버지 산소위로

조용히 쌓여만 가네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얼었던 내 마음도 열 틈 없이

 

내 사랑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조용한 거리 속으로 채영의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들어갔다. 채영이 뱉은 입김이 흐려지는 만큼 채영의 노래도 멀어져갔다. 서 있던 가로등이 몇 번 깜빡이더니 이윽고 툭 꺼져버렸다. 동시에 거리에는 차가운 어두움과 쌓인 눈이 반사시키는 뿌연 빛만 남았다. 보이지 않는 멀고 높은 하늘에서는 막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참이었다.

 

 

 

 

 

 

 

 

 

 

 

자유로운 바람은 아픈 향수를 피어나게 한다.

 

 

 

 

 

 

윤영지

 

1. 돌아와요, 부산항에

 

채영은 고향을 떠난 지 9년이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애미 잡아먹은 년'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은 뒤로 그녀는 아무 미련 없이 자신의 마을을 등지고 돌아섰다. 허약했던 채영의 어미는 그녀를 낳고 나서부터 하혈이 멈추지 않더니 다음날 아무도 없는 새벽에 죽어버렸다. 그날 아침, 채영의 아비가 죽은 아내를 발견했을 때 채영은 차갑게 식은 어미의 가슴팍에서 빽빽 울어재끼고 있었다. 그날부로 채영의 아비는 소주를 병나발로 불고 다녔고 집안의 물건들은 매일 박살이 나거나 자리가 바뀌었다. 아비가 던진 물건들은 방향 없이 날아다녔지만 그의 분노의 화살은 항상 채영에게 조준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18세가 되던 해의 어느 밤, 아비는 잠자던 채영을 더듬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게 아비를 발로 차버린 채영은 순간 긴 세월 알코올에 절여져 쪼그라든 한 노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경멸 섞인 '애미 잡아먹은 년' 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채영은 집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채영은 그대로 청량리발 기차표를 끊었다.

서울의 밤거리는 왁자지껄하면서도 건조했다. 모든 것들이 끈적하게 얽혀있던 그녀의 고향과는 사뭇 다른 질감에 채영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혀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어디선가 철 지난 노래가 흘러나왔다. 채영은 자연스레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아비가 술에만 취하면 음정도 없이 고래고래 부르던 노래였다. 노래를 쫓아가던 채영의 발이 멈춘 곳은 큰 붉은 간판에 '봄 춘春'자가 써진 가게였다. 채영은 멍하니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뱀 눈깔을 한 키 큰 여자가 앉아있었다.

"애는 안 받는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뱀 눈깔을 한 여자가 말했다. 채영은 잠시 서있더니 가지고온 짐을 땅바닥에 던지고 그대로 윗옷을 벗었다. 뱀 눈깔은 담배를 빨며 채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채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입고 있던 치마를 내렸다. 뱀 눈깔은 채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더니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고 말했다.

"들어와."

그리고 채영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 가게에서 몸을 팔며 살았다. 이곳에서 채영의 이름은 ‘동백’이었다.

채영은 여기서 지내는 동안 고향 생각은 정말로 한 끗만큼도 한 적이 없었다. 할 수가 없기도 했다. 돈은 생각보다 쉽게 모이지 않았고, 그래서 채영은 더 열심히 스스로를 팔아 돈을 모아야했다. 가게에서 '엄마'라 불리는 뱀 눈깔은 여자들이 번 돈에서 60%를 떼어갔다. 그러니 돈 모으기는 더 어려웠다. 그렇게 매일매일 남자들의 품에 안겨가면서 모은 돈은 가게에 온지 9년째가 되자 5000만원 가까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다면 채영은 가게를 나가 작은 과일가게를 차리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나간다고 하면 '엄마'가 순순히 보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채영 이전에도 돈 모아서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이 말을 꺼내자마자 '엄마'와 크게 싸웠고, 그렇게 싸우고 뛰쳐나간 사람들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보나마나 '엄마'가 수를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나간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로 돌아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돌아온 사람들은 원래 가게에 있었을 때보다 더 낮은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그런 사람들을 숱하게 봐온 채영으로서는 자신의 꿈을 그저 가슴속에 품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채영은 그렇게 매일매일 다른 남자의 향을 몸에 바르며 돈을 모았다. 시멘트 냄새, 소주 냄새, 막걸리 냄새, 담배 냄새, 땀 냄새, 고급 향수 냄새, 비누 냄새, 불 냄새. 채영의 몸에는 그 모든 냄새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가게 春에 오는 남자들은 채영을 썩 좋아했던 것 같았다. 냄새를 맡아보면 알았다. 채영이 손님을 받는 방은 조명이 어두워서 눈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손님 중에 냄새가 겹치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1주일에 한번은 가게에 꼭 들러서 채영의 몸을 스쳐갔다. 그렇게 특정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채영의 연인이라도 된 양 굴기 시작했다. 악세사리를 사오거나, 돈을 줄테니 나가서 자기와 같이 살자고 말하거나, 다른 남자 말고 꼭 자신하고만 자야한다고 말하거나, 어떤 순진한 남자는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와서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님들이 하는 짓거리가 ‘그 정도’가 될 때쯤이면, 채영은 그 손님들을 조금씩 피했다. 처음에는 몸이 안 좋다, 생리중이다, 따위의 작은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그들과의 자리를 피했고, 그래도 이들의 집착이 계속되면 ‘엄마’에게 살짝 말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귀띔을 해놓으면, 그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가게에 오지 않게 되었다. 채영은 그 이후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딱히 없었다. 그냥 그렇게 귀찮은 것들이 제거되고 나면 채영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냄새를 가진 사람들을 받아 몸을 섞었다.

채영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채영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어떤 이는 창녀가 신념을 가진다는 것을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채영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었고 그 철학에 따른 신념 또한 있었다. 채영은 자신의 직업이 단지 외로운 사람의 욕구를 해소해주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욕구를 해소해주는 것 이상은 자신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받아주는 그 순간부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들의 욕구를 해소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그들의 일상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채영은 남자를 믿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채영은 남자를 믿을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마치 예쁜 은박 포장지와 같아서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에 상관없이 그 물건을 반짝거리고 예쁘게 만들어버린다. 그 포장지만 보고 섣불리 그 물건을 소유했다가 정작 그 포장지가 뜯어지면 안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물건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채영이 보기에 사랑에 빠진 남자라는 게 딱 그 꼴이었다. 예쁘고 화려한 반짝이 포장지에 싸여진 음식물쓰레기. 채영은 그런 선물은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채영이 남자를 믿지 못하게 된 원인에는 아비인 ‘술개’의 영향이 가장 컸다. 채영에게 남성은 고통과 폭력, 억압의 형상화였다. 생각해보면, 그런 채영이 남자와 몸을 맞대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채영은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손님들을 받았고, 그 하루도 다른 날과 별 차이 없이 흘러갔다.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왔고, 채영의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채영이 웬만해서 처음 만났던 손님을 기억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 손님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채영이 몸을 씻고 나와 침대를 정리하고 있을 때 그 손님도 채영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은 어두웠지만 채영은 그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등골에 바싹 소름이 돋았다. 옅은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반짝인다기보다 번뜩이고 있었다. 마치, 맹수의 안광이었다.

“저, 몸만 말리고 할게요. 괜찮으시죠?”

“그러시죠.”

건조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방 안의 온도가 2도는 내려간 것 같았다. 채영은 가까스로 수건을 집어 올려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 때문에 목구멍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물기를 다 말린 후 채영은 다시 뒤돌아섰다. 그 손님은 처음 들어온 그 자세 그대로 꼿꼿이 서있었다.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며 채영은 침대에 가 앉았다. 손님은 문 앞에 선 그대로 고개만 돌려서 침대에 앉은 나체의 채영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기본 코스는 칠 만원이구요, 입으로 하는 것까지 하면 십 만원이고, 뭐......원하시면 뒤로도 해드려요. 대신 추가요금 오 만원 더 붙고요. 아, 콘돔은 꼭 끼셔야 하구요, 키스는 안 돼요.”

손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채영은 침대에 잠시 앉아있었다. 어찌해야할지 모를 이 어색함. 채영은 이렇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채영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끈적한 침묵이 이어졌다.

"안 하실 건가요?"

침묵을 걷어내고 싶어서 던진 말이 그대로 힘없이 그 둘 사이에 떨어져버렸다.

"채영."

순간 채영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가슴 속에서 무거운 추가 쿵, 떨어졌다. 배가 꾹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채영은 가빠지는 호흡을 붙잡고 대답했다.

"저는 채영이 아니라 동백인데요."

"알아, 채영."

채영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남자가 한 발짝씩 다가왔다. 바닥에 깔린 두꺼운 카펫에 구두 신은 발을 디딜 때마다 작게 부스럭 소리가 났다.

“......당신 누구야?”

남자는 답이 없었다. 그 남자는 계속해서 채영에게 걸어왔다. 맹수의 눈빛이 채영의 눈에 계속 달라붙어 있었다. 채영은 점점 무서워졌다. 채영은 얼굴은 돌리지 않고 천천히 팔을 뻗어 침대 옆 선반에 있는 호출벨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남자가 채영의 팔을 낚아챘다. 채영은 겁에 질린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채영은 처음으로 남자의 온전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상우?”

2. 처음

 

동백리는 작은 동네였다. 담벼락을 붙여 살던 집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사정이 없었고,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겨주며 살았다. 그런 동백리에서도 딱 하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채영 아비의 술주정이었다. 술만 들어가면 짐승이 되어버리는 그 인간을 동네사람들은 '술개'라고 부르며 되도록이면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채영의 아비는 동네 투전판이니 술집이니 잔칫집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면서 술 냄새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가 기어코 술을 받아먹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퍼마신 '술개'의 집에서는 밤마다 물건이 부서지고 집이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채영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상우는 그 '술개'의 집과 담벼락을 나눠 쓰는 사이였다.

상우와 채영은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다.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로 알게 된 것은 7살 무렵이었다. 상우는 읍내에 살다가 초등학교 선생인 아버지를 따라 동백리로 오게 됐다. 그렇게 이사 온 집이 바로 채영의 옆집이었다. 상우는 처음에 그 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겉만 보면 딱 그랬다. 난장판이 된 부엌, 마당에 한쪽에 거의 바닥과 한 몸이 된 닭장, 나돌아 다니는 깨진 술병, 오물 투성이의 벽까지. 상우가 사람이 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댓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더러운 운동화와 낡은 여자애의 구두를 봤을 때였다.

상우가 이사를 온 뒤 채영을 처음 본 곳은 동백리를 가로지르는 개울가였다. 채영은 개울가에 서서 자신의 몸보다 긴 막대기로 물을 휘젓고 있었다. 개울에 물고기를 잡으려고 나온 상우는 채영이 물을 휘젓고 있는 것을 보자 괜히 화가 났다.

"야, 그렇게 하지 마. 물고기 다 도망가잖아."

상우가 채영의 옆으로 다가서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영이 상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왼쪽 눈이 시커멓게 부풀어 올라 눈가에 피고름이 맺혀있었다. 반면에 떠진 반대쪽 눈은 동그랗고 예쁜 모양이었고, 동공은 정말 새카만 색깔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런 색.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런 눈동자 하나가 상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우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굳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서서 채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순간, 무엇인가 물에 풍덩 던져지는 소리와 함께 상우는 정신이 들었다. 채영이 막대기를 물에 던지고 달려가 버린 것이었다. 상우는 그렇게 채영이 사라진 뒤로도 한동안 그 개울가에 서 있었다. 까마귀가 울부짖으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날부터 상우는 매일 개울로 놀러갔다. 채영도 매일 개울에 나와 있었다. 둘은 물에 돌을 던지면서 놀거나, 막대기를 부딪치면서 싸움놀이를 하거나,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채영의 얼굴에는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고 상우는 그런 채영이 안타까워 집에 있는 간식을 가져가 채영과 같이 먹었다. 그러나 상우는 그때까지도 채영이 자신의 옆집에 사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여름밤이었다. 상우의 옆집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날아간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와 여자애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냥 귀를 틀어막거나 외면해버렸을 상우는 그날따라 유난히 호기심이 돌았다. 상우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옆집 대문 옆 담벼락에 몰래 섰다. 그리고 반쯤 열린 대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그 안을 살짝 엿보았다. 순간 그 집의 방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면서 조그만 여자애 하나가 마당으로 튕겨져 나왔다. 채영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영은 부들거리며 대문 쪽으로 기어왔다. 시커먼 방안에서 욕지거리와 함께 술병이 날아왔다. 날아온 술병은 채영의 얼굴 바로 옆에서 깨졌다. 채영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리고 떨었다. 상우는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있었다.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가슴이 튀어나올 듯이 아프게 두근거렸다. 잠시 주변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고요는 어색하다 못해 이질적이었다. 마치 온 동네가 사라진 것 마냥 조용했다. 상우는 자신도 모르게 쓰러진 채영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채영이 고개를 들었다. 채영과 상우의 눈이 마주쳤다. 채영의 검은 눈은 피로 엉겨 붙은 머리카락에 가려져도, 검은 여름밤에 묻혀도 처음 본 그 빛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상우는 채영의 앞에 조용히 쭈그려 앉았다. 채영이 부들거리는 손을 상우에게 내밀었다. 상우는 천천히 채영의 손을 잡았다. 둘은 잠시 동안 그러고 있었다. 이윽고 상우는 팔에 힘을 줘 채영을 일으켰다. 채영은 한쪽 다리를 절뚝였다. 아무래도 날아든 밥상에 맞은 듯했다. 상우와 채영은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개울가의 둔덕 뒤로 들어갔다. 그 둔덕은 둘이 같이 꼭 붙어서 아래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은 절대 둘을 보지 못하는, 그래서 둘만의 비밀장소였다. 상우와 채영은 그 아래에 들어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싹둑 하고 반으로 잘린 달이 하늘에 걸려있었고, 서늘하면서도 포근한 바람이 개울 위에서 불어왔다. 산 속에서 나무들이 바람에 가지를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둘은 그 소리들 사이의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별안간 채영의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들썩였다. 울고 있었다. 마치 이전에는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사람처럼, 채영은 그렇게 섧게 흐느꼈다. 주위를 둘러싼 빗방울 소리 사이로 채영의 울음소리가 조용히 섞여 들어갔다. 상우는 그런 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채영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얇고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어깨가 상우의 품에 들어왔다. 채영은 그렇게 그곳에서 밤새도록 흐느꼈고 상우는 그렇게 채영의 어깨를 끌어안고 밤새도록 옆에 앉아있었다. 유달리 조용한 밤이었다.

그날부터 그 둘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비가 오는 날도, 해가 맑은 날도, 눈이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낮도, 밤도. 어느 곳에서든지 둘은 함께였다. 채영은 ‘술개’가 지랄을 떠는 밤마다 도망쳐 나와 개울가 둔덕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상우가 항상 앉아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채영은 ‘술개’ 때문이 아니더라도 둔덕으로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같이 붙어있는 만큼 둘의 마음은 자연스레 커져갔다. 둘은 항상 서로의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손을 잡았고,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처음으로 입을 맞췄다. 그렇게 그 둔덕 아래에는 그들의 처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채영과 상우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채영은 상우에게 말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었다.

3. 향수香水

 

“......상우?”

채영은 다시 한 번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채영의 팔을 잡은 남자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상우니?”

남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상우야? 상우 맞아?”

남자가 고개를 떨궜다.

“알아보는구나.”

침묵 끝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못 알아볼 줄 알았어.”

하, 채영은 헛웃음이 났다. 채영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건조한 침묵이 시작됐다.

“잊었어.”

채영의 한 마디가 침묵을 깨뜨렸다.

“마을을 떠난 뒤로 네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채영이 상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네 생각뿐만 아니라 그 망할 동네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상우가 고개를 들었다.

“팔 좀 놔줄래?”

상우가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왜 찾아온 거야?”

상우가 채영의 옆에 앉았다. 순간 채영은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한기가 느껴졌다.

“아니 그보다......너 여길 어떻게 찾아온 거야?”

상우가 고개를 돌려 채영을 쳐다보았다. 채영의 눈이 의구심으로 흔들렸다. 분명 자신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곳에 왔을 텐데, 상우는 도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지.

“연어는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대.”

상우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냄새를 기억한대. 그래서 아무리 먼 바다로 나가서 10년 가까이를 지내도, 그 길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래.”

채영은 이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난 늘 믿고 있었어. 네가 언젠가는 다시 그 개울가로 돌아올 거라고.”

채영은 고개를 돌렸다. 선반 위에 담배 한 갑이 놓여있었다. 채영은 가게에 들어오고 나서 언니들에게 담배를 배웠다. 채영은 담배 한 개피를 집어 들어 불을 붙였다. 장막 같은 연기가 천천히 침묵을 채웠다.

“나한테 고향 따위는 없어.”

채영이 공중에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나는 다 잊었어. 깨끗이 털어버렸어. 그 집은 나한테 지옥이야. 술에 취한 음탕한 개새끼가 주인인 시커먼 지옥.”

상우가 나른한 연기 사이로 채영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얼굴에 상처는 없네.”

상우가 말했다. 채영은 잠시 담배를 손에 쥐고 상우를 쳐다봤다. 그제야 채영은 상우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다. 채영의 기억 속에 있는 상우는 말끔한 얼굴에 작지만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코와 꽤 컸던 귀, 잉크로 깨끗하게 그린 것 같은 눈썹, 숱 많은 까까머리. 그러나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상우는 꽤나 달라진 모습이었다. 오른쪽 눈가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긴 흉터부터가 그랬다. 선이 진해진 얼굴과 며칠 깎지 않은 듯한 수염, 검게 탄 피부까지. 딱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은 그 눈이었다. 채영은 어쩌면 그 눈 때문에 이렇게 변한 상우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빛나는 눈. 그러나 그 빛은 그때와 달리 서늘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채영은 상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유난히 담배가 썼다.

“많이 변했네.”

채영이 고개를 돌리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많이 변했지.”

상우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채영은 고개를 돌려 그런 상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상우의 등이 저렇게 넓었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래. 나도 많이 변했는걸.”

채영이 다리를 꼬았다. 문득 채영은 상우의 기억 속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했다. 상우는 내가 많이 변했다고 해줄까. 아니면 그대로라고 해줄까. 상우가 고개를 들어 채영을 쳐다보았다.

“안 변했어.”

상우가 말했다. 채영이 담배를 비벼 껐다.

“어떻게 나를 찾은 거야?”

상우가 시선을 피했다. 둘 사이를 다시 침묵이 에워쌌다. 그때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상우는 말없이 일어나 걸어 나갔다. 채영이 나가는 상우의 팔을 붙잡았다.

“말해줘.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야?”

상우는 잠시 채영을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코팅된 정사각형 종이 한 장을 꺼내 채영에게 건넸다. 단발머리 소녀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열여덟 살 시절 상우의 기억 속 채영이 그 그림 속에 들어있었다.

“이거 하나 들고 모든 곳을 찾아다녔어. 시골 다방부터 서울의 레스토랑까지, 네가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지고 다녔어.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곳까지 와 본건데, 여기서 너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거야.”

채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우는 뒤돌아서 그대로 나가버렸다. 인사도 없이,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가버렸다. 채영은 그림을 손에 들고 그렇게 나가는 상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서있었다. 방 가득하던 담배연기가 열린 문으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마치 상우가 가져온 오래된 고향의 향기가 빠져나가듯이.

4. 연기煙氣

 

채영은 그렇게 사라졌다.

상우는 채영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채영이 사라진 다음 날 상우는 여느 때처럼 둔덕 아래에 앉아있었다. 달도 뜨지 않은 까아만 밤이었다. 숲속도 조용했다. 상우는 샛별이 산마루 위에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채영은 오지 않았다. 물론 채영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상우는 채영이 아파서 나오지 못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상우는 곧 툭툭 털고 일어나 집 쪽으로 걸어갔다. 채영의 집 앞에 잠시 서서 대문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상우는 담벼락 옆에 핀 동백꽃을 꺾어 대문 앞에 살짝 내려놨다. 그리고 부모님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하루가 더 지나도 채영은 보이지 않았다. 문 앞에 내려놨던 동백꽃은 누군가의 발에 밟혀있었다. 상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술개’의 집이 너무 조용했다. 채영이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그 ‘술개’가 얌전히 앉아 아픈 딸을 간호할 인간은 아니었다. 아파서 누워있더라도 발로 차던지 밥상을 집어던지던지 무슨 지랄을 해서라도 채영을 괴롭힐 인간이었다. 그래도 상우는 ‘혹시 모르니까’라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날 밤에도 상우는 냇가에서 채영을 기다렸지만 채영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술개’의 집은 그 다음날도 조용했다.

하루 이틀이 더 지나고 참다못한 상우는 채영의 집을 찾아갔다. ‘술개’는 집에 없었다. 문을 살며시 열고 채영의 집을 들어간 상우는 댓돌에 채영의 신발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머리 뒤쪽이 욱씬 했다. 상우는 마당을 한 번 휙 돌아봤다. 무너지기 직전인 닭장도 그대로였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깨진 술병들도 그대로였다. 직감적으로 상우는 채영이 결국 떠나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채영은 종종 상우의 품에 안겨 울면서 언젠가 이곳을 떠나버릴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상우는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지,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상우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둔덕으로 달려갔다. 둘이 항상 앉아있던 자리는 여뀌풀이 눌린 모습 그대로였지만 채영은 거기 없었다. 상우는 그날 하루 종일 동백리를 돌아다니며 채영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채영의 흔적은 동백리 어디에도 없었다. 며칠을 계속해서 찾아다니고 나서야 상우는 채영이 아주 떠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올 거야.

상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매일 둔덕에 앉아 채영을 기다렸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 날 ‘술개’가 죽었다. 채영이 사라진 후에도 ‘술개’는 변함없이 동네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거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술을 얻어먹고 행패를 부리고 다녔다. 여느 때와 같이 동네 투전판에서 막걸리를 마신 ‘술개’는 또한 여느 때와 같이 지랄을 떨기 시작했고, 투전꾼 한 명과 시비가 붙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었다. 주먹다짐이 오갔고,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평소 같으면 말렸을 동네 사람들도 이번에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들 ‘술개’의 지랄에 질려버린 탓이었다. 채영이라도 있었다면 ‘애 볼까 두렵다’, ‘채영이 생각해서 이러지 말라’ 따위의 핑계로라도 말렸겠지만, 이제 채영이 없는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해졌다. 그러다 ‘술개’가 술병을 집어 들어 싸움꾼을 내리쳤고 이윽고 싸움꾼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본 싸움꾼은 꼭지가 돌아버렸고 앞에 있던 술상을 집어 들어 ‘술개’를 미친 듯이 패기 시작했다. 늙어 몸이 약해진 ‘술개’는 저항할 힘이 부족했다. 결국 ‘술개’는 바닥에 넘어져버렸고 ‘술개’를 패던 술상이 부서지자 싸움꾼은 술병을 집어 들어 다시 패기 시작했다. 이젠 좀 지나치다 생각했는지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보다 못한 한 사람이 달려들어 싸움꾼을 떼어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그제야 싸움꾼을 ‘술개’에게서 떨어뜨렸다. 겨우겨우 싸움꾼을 진정시켜놓은 다음 사람들은 천천히 ‘술개’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싸하고 축축한 정적이 사람들 사이에 맴돌았다. 사람들은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 싸움꾼을 말리려 달려든 사람이 ‘술개’의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곧 손가락을 뗀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죽어버렸구만.”

그 유명했던 ‘술개’는 그렇게 죽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술개’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집 뒤편에 있는 작은 마당에 묻어주고 작은 비문을 만들어줬다. 비문에는 ‘주사酒士’ 두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한때 같은 마을 사람이었던 이들의 조롱과 위로가 섞인 선물이었다.

‘술개’의 장례식은 흡사 마을의 잔칫날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 좁은 집마당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왁자지껄하게 술을 퍼마셨고, 마을의 아낙들은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날랐다. 마을의 구성원이 죽었다는 슬픔도 잠시,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는 듯이,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이 서로 즐기고 놀았다. 아주 가끔 어색하게 슬픈 공기가 돌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건배를 하며 그 공기를 날려버렸다. 어찌 보면 매우 기이한 모습이었다. 낡은 집 방 한 켠에 ‘술개’의 관짝이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마당에 나앉아있었다. 누구는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누구는 조임줄이 다 늘어난 장구를 치고, 누구는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막걸리에 취해 막말을 지껄이고, 누구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누구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누구는 음식을 나르는 과부에게 추파를 던지며 치근거리고, 누구는 소란을 틈타 옆집 창고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고, 누구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토론을 하고......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버린 동백리는 ‘술개’의 죽음이 가져다준 오래간만의 왁자지껄함으로 잠시나마 옛날의 활력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상우는 ‘술개’의 장례를 치르는 이 모든 과정에 같이 있었다. 혹시나 아비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지도 모를 채영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물론 채영이 소식을 들었다는, 또 소식을 듣고 나서 동백리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었지만 그래도 상우는 혹시나, 혹시나, 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역시나 채영은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동백리는 그날 이후로 채영을 영영 지워버리게 되었다.

‘술개’가 그렇게 죽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우의 아버지가 다른 지역 학교로 발령이 났다. 상우네는 이사를 해야 했고, 곧 동백리를 떠났다. 떠나기 하루 전, 상우는 개울 옆 둔덕에 잠시 들렀다. 와주는 사람이 없어진 둔덕에는 풀이 무성했다. 둘이 같이 앉아있던 곳에는 여뀌가 한가득 자라있었다. 상우는 여뀌를 눌러 밟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둔덕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숲속 나뭇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꼭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하늘에는 은고리 같은 초승달이 떠있었다. 개울이 졸졸졸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습하고 뜨뜻했다. 상우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상우네는 포항의 중심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발령이 난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철소를 들어갔다. 자신이 원해서 들어간 것이었다. 상우의 아버지는 상우가 대학을 가고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상우는 완고하게 제철소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상우를 몇 번 설득했지만 상우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제철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그날로 상우는 제철소로 가서 일자리를 구했다. 상우는 용광로가 있는 곳에 배치 받았다. 제철소 일은 고된 일이었다. 용광로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피부는 붉게 탔다. 달아오른 공기와 쇳물에서 나오는 증기 때문에 폐 깊은 곳까지 증발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뼛속까지 녹아내리게 만드는 열기도, 미친 듯이 기침을 하게 만드는 증기도 상관없었다. 상우는 제철소 일을 하면서 동백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쇳물과 함께 녹아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술개’도, 그 개울가도, 채영도. 그러나 쇳물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채영에 대한 생각을 더 뜨겁게 달굴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달궈진 채영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더 상우의 몸을 미치게 만들었다. 상우는 일이 끝나면 인부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취해 인사불성이 된 채로 포항 시내의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혹시나 여기에 채영이 있을까. 상우는 이때부터 술만 마시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뜨겁게 달아오른 채영의 생각은 상우의 몸을 이리저리로 끌고 다녔고, 상우는 그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녔다. 음식점, 술집, 룸살롱, 찻집, 다방, 심지어 노숙자 보호소까지. 채영은 없었다. 상우의 몸은 점점 더 미쳐갔다.

그렇게 떠돌던 어느 날이었다. 상우는 호미곶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관광객들이 좀 보였고, 그렇게 관광을 온 연인들을 위해 길거리 화가들이 캔버스를 들고 나와 있었다. 상우는 그 모습들을 그냥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상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우는 멀찍이 있는 한 화가에게 걸어갔다. 주위에 몇 점의 캐리커처들이 걸려있었고, 캔버스에는 ‘한 장에 1000원’이라고 써져 있었다. 상우는 지갑에서 1000원 지폐를 꺼내 화가에게 내밀었다.

“그려드려요?”

화가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저 말고 그려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데?”

“그게......얼굴을 제가 설명해드리면 그려주실 수 있습니까?”

“뭐......안 될 거야 없는데. 자세하게 설명하셔야 돼요.”

“자세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화가가 상우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짝사랑 하는 거요?”

“그려주시죠.”

“흠......그래 뭐 그려드리죠. 일단 거기 앉으세요.”

상우는 화가의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화가가 4B연필을 집어 들었다. 상우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화가의 손은 상우가 설명하는 모습을 그대로 종이에 그려냈다. 흰 피부, 까맣고 동그란 눈, 오똑한 코, 짧은 검은 단발머리, 얇은 목, 약간은 큰 입, 왼쪽에만 있는 보조개, 눈썹 아래의 점까지. 상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채영의 얼굴이 종이 위에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화가는 능숙하게 그림을 그려나갔고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그림은 거의 완성이 되어있었다.

“채색까지 하면 500원 추가인데, 어떡하시겠습니까? 채색까지 해드려?”

상우는 고민 없이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채색이 들어가자 종이 위의 채영은 정말로 상우 앞에 살아있는 듯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그림은 완성되었다. 상우는 그림을 받아들고 곧장 문방구로 달려가 코팅을 했다. 코팅되어 나온 그림을 상우는 한동안 들여다봤다. 쇳물의 열기가 살려낸 채영의 기억이 그림에 그대로 번져 나왔다. 상우는 채영과 개울가 둔덕에서 했던 첫 입맞춤이 기억이 났다. 구름에 달이 가린 밤이었다. 그 탓에 주변이 온통 캄캄했다. 둔덕에 앉아있으니 물 흐르는 소리만 잔잔히 들렸다. 채영과 상우는 손을 꼭 붙잡고 나란히 앉아있었다. 채영의 볼에는 이틀 전 ‘술개’에게 맞은 멍이 아직 푸르게 남아있었다. 하얀 채영의 피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났다. 상우는 채영을 바라보다 멍이 남아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채영이 아팠는지 움찔 했다. 그래도 피하지는 않았다. 상우와 채영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둘의 얼굴이 서로에게 다가가다가 멈칫 했다. 사이에 종이 한 장만 들어갈 정도의 틈이 남아있었다. 채영은 눈을 감고 있었다.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상우는 눈을 감고 채영에게 입을 맞췄다. 보드라운 채영의 입술이 상우의 입술에 닿았다. 둘은 잠시 그렇게 입술을 포개고 가만히 있었다. 채영이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상우도 채영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서툴렀다. 마치 처음 쓰는 근육을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하고 뻣뻣했다.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고개를 돌리는 것도, 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도 다. 그래도 밤은 길었고, 어두웠고, 깊었다. 어둠속에서 둘은 더 섬세해졌고 예민해졌고 곤두섰다. 서로를 만지고, 서로를 느끼고,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갔다. 그 밤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갔다.

바닷바람이 가만히 서있던 상우의 정신을 흔들고 지나갔다. 상우는 소매로 얼굴을 닦아내고 그림을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달궈진 생각이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상우는 모자를 눌러쓰고 황급히 걸어갔다.

5. 뒷모습

 

채영은 열린 문을 닫은 뒤 침대로 돌아와 앉아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채영은 오늘만 일을 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채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머리 아픈 일이 있었다.

채영이 동백리를 떠난 이후로 상우의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매일 상우 때문에 그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었고, 매일 밤 상우의 생각 때문에 몸이 미쳐갔다. 자신의 몸은 매일 다른 남자의 몸을 받아야 했지만, 채영이 원하는 것은 상우의 몸이었다. 그 둔덕에서 항상 자신과 붙어있던 상우의 몸이 그리웠다. 상우가 그리웠다. 당장이라도 상우가 저 문을 열고 달려와서 자신에게 입을 맞춰주었으면 했다. 채영이 동백리를 떠난 이후로 상우는 분명히 자신을 찾아다녔을 것이었다. 낯선 남자 아래에서 흔들리며 채영은 속으로 끊임없이 상우를 불렀다. 지금 여기 있다고, 그러니 당장 달려오라고, 나를 찾아오라고. 그러나 부르고 불러도,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상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상우가 아니라 다음 손님이었다. 가게에서 제일 어렸던 채영을 손님들은 많이 찾았다. 채영은 끊임없이 손님을 받아야 했고, 그렇게 채영의 몸에 다른 남자들의 향이 쌓여가는 것과 동시에 상우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밀려나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며 채영은 결국 상우에 대한 미련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편이 채영의 생활에 더욱 도움이 되었다. 채영의 생활은 바깥의 기억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이름을 바꿨다는 것 자체가 이전의 바깥 생활과 아예 상관이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가게의 여자들은 ‘엄마’의 소유물이었다. ‘엄마’는 여자들이 바깥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드러낼 때마다 가혹한 체벌을 했다. 이곳에서는 돈을 빼돌리는 것보다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 더 큰 죄였다. ‘엄마’의 논리는 그랬다.

‘제 발로 지하에 기어들어온 년들에게 과거를 그리워할 권리 따위는 없다.’

그에 따라 여자들은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었고, 외출을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엄마’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가드를 동반한 두 시간의 외출이 가능했다. 외출을 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가게에 500미터 이상 떨어지지 말 것, 가드와 떨어지지 말 것,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말 것, 주어진 돈 외의 지출을 하지 말 것, 해가 지기 전에는 들어올 것, 먹을 것을 사들고 오지 말 것. 이런 제약들은 그나마 자유가 보장된 외출시간에도 여자들을 감시했다. 이것들 중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즉시 가드에게 붙들려 가게로 끌려들어가야 했고, 그 뒤로 3번의 외출이 금지되었다. 한 마디로, ‘바깥’이라는 것은 가게의 ‘안’과 철저히 분리되어야만 했다.

“너희는 너희 스스로 밖을 버리고 어둠으로 도망친 년들이야. 어딜 감히 버린 걸 다시 가지고 기어들어와? 너희가 그럴 자격이나 있어?”

언젠가 채영이 규칙을 어기고 가드를 따돌리고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 들어온 날, ‘엄마’가 채영을 가죽 채찍으로 후려치면서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그날 채찍에 난 상처와 같이 채영의 몸 속 깊숙이 새겨졌다. 채영은 그날 이후로 바깥에 대한 생각은 정말로 저버렸다. 아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았다. 채영은 바깥의 빛을 지하의 어둠으로 끌고 들어오기보다, 스스로 지하를 벗어나 바깥으로 걸어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둠을 완전히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지금 더욱 어둠에 잠겨야했다. 동 트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그때부터 채영은 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매일 밀려오는 손님을 몸으로 받아냈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채영의 이후에도 들어온 여자는 많았고, 채영처럼 돈을 모아서 가게를 나간 여자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로 돌아와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가게에서 썩어나갔다. 채영은 그런 여자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확실히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워나갔다. 어떻게 하면 확실히 이곳과 손을 끊고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나가서도 아무 문제없이 잘 자리 잡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러던 중, 상우가 찾아온 것이었다.

채영은 손에 들려있는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림에 자신의 풋풋한 사춘기 시절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코팅이 누렇게 변해 있었고, 가장자리는 날카롭기는커녕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웠다. 도대체 이 그림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했을까. 아니면 상우가 그렸을까. 채영이 알고 있는 상우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을 것이었다. 상우의 기억 속 채영은 저 모습이었다. 사춘기의 소녀. 채영은 화장실로 걸어가 세면대 앞의 거울을 보고 섰다. 거울 속에 서 있는 채영은 그때와 많이 변해있었다. 머리는 단발이 아니라 긴 생머리였고, 얼굴은 더 갸름해져 있었다. 얇고 약간은 뻣뻣했던 몸은 이제 유연한 곡선들이 채우고 있었다. 채영이 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동그랗고 까만 눈과 코와 보조개였다. 채영은 거울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상우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고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 걸까. 눈이었을까, 코였을까, 보조개였을까. 채영은 다시 침대에 돌아와 털썩 누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과거의 향수가 얇아진 기억의 막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동백리, 산, 빗소리, 개울가, 둔덕, 집, 그녀의 아비, ‘술개’. 채영은 손을 더듬어 담배를 찾았다. 딱 한 개비가 남아있었다. 채영은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담배를 입에 문 다음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엄마’가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채영은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까 그 남자, 뭐니?”

‘엄마’가 재차 물었다. 채영이 담배연기를 훅, 내뱉은 후 대답했다.

“고향 친구.”

“갑자기 왜 오늘은 쉬겠다고 한 거야? 내 말도 끝까지 안 듣고 전화를 끊어버리질 않나. 저 고향 친구인가 뭔가 때문에 그래?”

“그런 거 아냐. 그냥 몸이 안 좋아. 오늘 하루만 쉬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게요.”

‘엄마’가 미심쩍은 듯이 채영을 바라보았다. 채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고 엄마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 가?”

“담배.”

“꼴초년 같으니라고.”

채영은 뒤돌아서 ‘엄마’ 보란 듯이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이거라도 안 피면 죽어버릴 것 같거든.”

자판기에서 담배를 꺼낸 채영이 ‘엄마’를 지나쳐 방에 들어가다가 그 앞에 멈춰 섰다.

“아, 엄마, 다음에 내 고향 친구 또 오면 바로 내 방으로 보내줘. 알겠지? 부탁할게.”

채영은 ‘엄마’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손을 살짝 흔들고는 방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사온 담배를 서랍에 던져 넣고 채영은 그대로 침대에 푹 엎어졌다.

“썅, 나보고 어쩌라고.”

6. 바람

 

그림을 받은 이후로 상우는 제철소를 나왔다. 그리고 최대한 전국을 떠돌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어디 있을지 모를 채영을 찾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다. 상우는 인력시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인력시장에 한 달, 이 주, 일 주짜리 막노동 일들이 나오면 어떻게든 따라붙었다. 공사장 철거 작업, 쓰레기 매립지, 석유 공장, 타이어 공장, 유리 공장, 비료 공장 등의 일을 하며 상우는 거의 한두 달 간격으로 도시에서 도시를 건너 다녔다. 낮 시간에는 악착같이 돈을 벌고, 일이 모두 끝난 밤부터 새벽까지는 그림을 들고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채영을 찾아다녔다. 시골의 다방부터, 서울의 레스토랑까지 안 들어가 본 곳이 없었다. 채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모두 들어가 그림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상우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니오, 우리 가게에는 이런 애 없는데.”

“저희 애는 안 써요. 딱 봐도 어려 보이는구먼. 딸이요?”

그렇게 상우는 가는 곳마다 허탕을 치고 나왔다. 상우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상우는 서울의 한 도축 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도축공장 주변에 다방은 거의 없었고, 주로 ‘가게’들이 있었다.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인부들은 생고기 살에서 나는 비린내를 풀풀 풍기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천쪼가리 몇 장만 걸친 여자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상우는 채영이 그런 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혹시나’ 하는 생각을 꾹 눌러놓고 외면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우는 채영이 그런 ‘가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도축공장 주위에도 다방이 딱 하나 있었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아 망하기 직전처럼 보이는 지저분하고 허름한 동네 다방이었다. 상우는 과연 그런 곳에 채영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처음 며칠은 그 다방을 그냥 지나쳐갔다. 그리고 너무 지치기도 했다. 계속해서 똑같은 대답들만 들으니 과연 채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방이 마음에 조금씩 걸렸다. 사실 채영이 저런 다방에 있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상우는 그 다방을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이 끝난 어느 날 상우는 다방의 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방은 어두침침했고, 안에는 소파 세 네 개 정도와 테이블 네 개가 있었다. 좁았다. 상우는 들어가자마자 있는 가장 가까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카운터에 서있던 뷔스티에를 입은 깡마른 단발머리 여자가 슬금슬금 상우에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오빠네? 뭐 드릴까요? 커피? 쌍화차? 아님 우유라도 데워드려요?”

푼수끼가 다분히 보이는 여자였다. 상우는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서 채영의 그림을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이 여자, 본 적 있어요?”

여자가 그림을 받아들고 상우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이 여자랑 무슨 사이인데요?”

여자가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상우에게 물었다. 상우는 여자에게 간단하게만 설명했다. 같은 고향 사람이고,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랑하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져버려서 이렇게 찾고 있다. 그렇게 사라진지 9년이 다 되어간다. 상우는 이야기를 하다가 새삼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갔나, 하는 생각에 허탈함을 느꼈다.

“오빠 혹시 ‘가게’는 가봤어요?”

상우의 이야기를 다 들은 여자가 한 말이었다.

“가게?”

“그런 여자들 집 나가서 들어갈 곳 뻔해요. 이런 다방 아니면 가게. 만약 오빠가 정말로 다방은 다 가봤다면, 이 언니? 언니 맞죠? 하여튼 이 언니 내 생각에는 가게 들어간 것 같은데.”

“가게......라 하면......”

여자가 피식 웃고 말했다.

“몸 파는 데요. 창녀촌.”

상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저도 시골에서 무작정 서울 올라와서 처음에는 가게 들어갔었어요. 갈 데가 그곳밖에 없더라구. 안 받아줘.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여자가 쿡쿡 웃었다.

“그렇게 가게에서 한 3년 있었나. 그러다가 점점 손님들이 날 안 찾더라구. 점장 말로는 뭐, 사람들 취향이 바뀌었다나 뭐라나. 웃기지 않아요? 지들도 급해서 우리 찾는 거면서 거기서 취향 따지고 있더라니 까요. 아무리 배고파도 지 입맛에 맞는 음식 먹겠다는 거지. 하여튼 남자 새끼들은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있어보여야 된다니까.”

상우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결국 채영이 ‘그런 곳’에 들어갔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었다.

“그렇게 3년 있다가 결국 신입이들한테 밀려서 쫓겨났어요. 다른 가게들도 사정 똑같은지 안 받아주더라고. 그래서 길바닥 구르고 구르다가 이 다방까지 오게 됐어요. 다 옛날 얘기지 뭐. 근데 오빠 커피 한 잔 안할래요? 내가 여기서 커피로는 제일 유명한데.”

상우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더 들을 이야기는 없었다. 이제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았으니, 남은 일은 다시 찾아나서는 것뿐이었다.

“오빠, 그냥 가게?”

“얘기 고마워요.”

상우는 다방 문을 열고 길거리로 나섰다.

“오빠, 이건 챙겨가야지. 언니 찾아야 되잖아?”

상우를 따라 나온 여자가 가지고 있던 그림을 다시 상우에게 돌려줬다. 그림을 다시 받아든 상우는 그림을 안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 공장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빠, 언니 꼭 찾아요!”

여자가 상우의 뒤에서 소리쳤다.

“그리고 만약 찾더라도 실망하지 말구.”

여자가 작게 뒤에 덧붙였다.

“실망하지 말라니......”

상우는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늘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7. 아침

 

채영은 어제 엎어진 자세 그대로 일어났다. 10년 전에 가게에 들어온 다음 처음으로 마음 놓고 깊게 잠을 잔 것 같았다. 등허리가 뻐근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정오였다. 새벽 영업은 4시에 끝났을 것이었다. 아침영업은 11시 시작이었다. 채영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알람도 꺼져 있었고, 문 앞에서 성난 채 기다리는 손님도 없었다. 이상하게 채영의 주위만 조용했다. 침대 옆 서랍에 물 한 잔과 포스트잇 하나가 놓여있었다. 일어나면 카운터로 와라. ‘엄마’의 글씨였다. 지금 채영을 둘러싸고 있는 고요는 ‘엄마’의 배려였다. 채영은 처음으로 이 가게에서 포근함을 느낀 것 같았다. 채영은 침대에서 나와 세안을 한 뒤 카운터로 갔다. ‘엄마’가 카운터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좀 낫니?”

채영은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 서서 멋쩍게 물었다.

“뭐야, 오늘 손님 없어요?”

“없기는. 너 어제 이상하길래 그냥 안 들여보냈다.”

“왜, 깨우지. 알람도 꺼놨더만.”

“아픈 년이 손님은 무슨. 그럼 손님도 안 좋아해.”

‘엄마’가 신문을 넘기며 말했다. 채영은 피식 웃었다. 손님이 안 좋아한다니. 아프고 싶어도 손님 때문에 못 아픈 다는 말인가.

“푹 잤니? 좀 나아?”

‘엄마’가 다시 물었다. 좀 낫나. 채영은 속으로 생각해봤다. ‘낫다’라는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어제와 똑같았다. 그럼 나은 게 아닌가. 심장 속에 깃털이 들어앉은 것처럼 간질간질 했다.

“괜찮아요.”

채영은 속마음과 다른 말을 던지고 자판기에서 콜라를 한 캔 뽑았다.

“이제 손님 들여보내도 돼요.”

콜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채영은 입가를 슥 닦았다. ‘엄마’가 신문 너머로 채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딸랑, 문이 열렸다. ‘엄마’와 채영은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상우였다.

“제가 데리고 갈게요.”

채영이 카운터에 콜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채영을 바라봤다. 채영이 그냥 상우를 내보냈으면 하는 눈치였다. 채영은 모른 척 상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상우는 마치 나무토막처럼 끌려왔다. 채영은 상우를 자신의 방 안에 밀어 넣고 문을 쾅 닫았다. 상우는 방 한가운데 뻣뻣하게 서있었다. 채영은 문을 등지고 섰다. 건조한 침묵이 시작됐다.

“날 어떡할 거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상우가 대답했다.

“보자마자 방 안에 밀어 넣고. 어쩌려는 거야?”

채영은 머쓱해졌다. 괜히 상우를 의식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거기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하는 게 더 편하니까.”

상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여기가 더 편하다고?”

채영은 아차, 싶었다. 이 방이 상우에겐 절대 편할 리가 없었다. 사랑했던, 어쩌면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가 몸을 파는 공간. 자신을 그런 공간에서만 볼 수밖에 없는 상우. 채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우가 다시 시선을 바닥에 박고 손톱으로 코트의 겉감을 긁었다. 더욱 건조해진 침묵이 방안을 휘돌았다. 문득, 채영은 잔인한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나를 왜 찾아온 거야?”

“아직도 나를 사랑해?”

움직이던 상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8. 연어

 

상우는 그 다방에서 나온 다음부터 서울 곳곳의 창녀촌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상우가 가게들을 찾아다니면서 알아낸 사실들이 있었다. 첫째, 가게의 여자들은 모두 가명을 사용한다는 것. 둘째, 가게의 포주들은 ‘손님’이 아닌 이상 비협조적이라는 것. 셋째, 가게는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것. 넷째, 가게들끼리는 서로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 이 네 가지 사실들은 상우가 채영을 찾을 때 이전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어려울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상우는 일단 침착하게 서울에 있는 가게들을 하나씩 돌기로 했다. 상우는 공장이 있던 주변의 가게를 먼저 돌았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소득은 없었다. 어떤 가게에서는 소금을 맞으며 쫓겨나기도 했고, 가게를 지키는 덩치들에게 끌려 나가 잔뜩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래도 상우는 그 동네에 있는 가게들을 모두 들어가 봐야 했다. 그러나 이미 서울에는 상우가 짭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게들은 상우가 지나가기만 해도 창문을 닫고 네온사인을 내렸고, 그러기 전에 상우가 달려들어 어떻게든 가게에 들어가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상우는 서울에 있는 마지막 가게까지 찾아가게 되었다. 미군부대 옆에 있는 쥐구멍만한 가게였다. 상우가 다가오자 나와 있던 여자들이 피던 담배를 툭 던지고 가게로 황급히 들어갔다. 재수 옴 붙었다는 눈이었다. 상우는 급히 그 뒤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나 입구에서 상우를 맞이한 것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하와이안 셔츠를 빼입은 덩치 둘이었다. 상우는 그대로 덩치들에게 끌려나와 뒷산에서 각목으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 덩치들이 돌아간 뒤에도 상우는 한참을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얻어맞아 돌아가지 않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 지랄을 해가면서 까지 채영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한 일인 듯 채영을 찾아 나선 상우였지만 자신이 왜 채영을 찾아야 하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왜 채영을 찾아야할까.’

비가 떨어졌다. 상우는 엎드려있던 몸을 뒤집어 하늘을 봤다. 구름이 낀 밤하늘은 약간은 붉은 기가 도는 짙은 회색이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얼굴을 때렸다. 상우는 부풀어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왜 채영을 찾을까.’

머릿속에 수 만 가지 생각들이 들어찼다. 이사하던 날, 옆집에서 들리는 와장창 소리와 소녀의 비명소리, 조용한 뒷산, 반쪽짜리 달, 조그맣던 개울가에 핀 여뀌, 물이 퍼지는 파장, 막대기를 잡은 작은 상처투성이 손, 부풀어 검게 변한 눈두덩, 그 속에서 빛나는 검은색 눈, 타타탓 달려가는 발소리, 차갑던 물의 온도, 뿌려지던 물방울, 놀라 도망가던 백로, 산 속에서 울던 까마귀, 나뭇가지 부딪히는 소리, 시끌시끌하던 마을 잔칫집, 웃음소리, 소녀의 목소리, 달이 빛나던 밤, 등에 부스럭 닿던 모래 둔덕, 풀이 눌린 자국, 맞잡은 가느다란 손가락, 숨소리, 빛나던 입술, 미끈거리고 부드럽던 감촉, 하얀 피부, 검은 머리카락, 조그만 어깨, 가는 허리, 뜨거워진 볼, 풀이 쓸려 부스럭대던 소리, 맞부딪히던 이빨, 그 사이로 오가던 혀, 조용한 숨소리, 달빛에 부드럽게 피어난 채영의 하얀 피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첫 마주침, 그리고 첫 키스의 기억이었다. 상우의 기억 중 채영이 함께 있는 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채영은 기억의 시작이었다. 채영의 검고 깊은 눈동자가 상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보면 그 눈 때문이었다. 개울가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 빨려 들어갈 듯이 깊고 새카만 눈. 상우는 어쩌면, 그 깊은 검은 눈 속에서 빛을 본 그날부터 채영에게 사로잡혔을지도 몰랐다. 머리가 아파왔다. 잊고 있던 몸의 통증이 돌아오고 있었다. 갈비뼈가 나간 것 같았다.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눈두덩이 뜨거웠다. 서서히 덮쳐오는 통증에 상우는 몸을 웅크렸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와르르 쏟아졌다. 옆에서 흙냄새가 피어올랐다. 순간 동백리의 개울가가 생각이 났다. 그 개울가 옆에 있던 둔덕이 생각이 났다. 그 둔덕에 자라있던 여뀌가 생각이 났다. 상우는 마치 지금 자신이 그 둔덕에 누워있는 것처럼 맥이 탁 풀려버렸다. 여기 있을 리가 없는 개울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들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우는 천천히 윗몸을 일으켰다.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산 아래 미약하게 빛나는 집들이 보였다. 상우는 손바닥을 펴 눈앞에 가져갔다. 손에 묻어있던 피와 흙이 빗물에 씻겨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채영을 찾아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채영은 상우의 시작이었다.

아직 채영을 사랑한다.

이게 그 답이었다.

9. 의미

 

“아직 날 사랑해?”

채영이 다시 상우에게 물었다. 상우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 봤을 때의 서늘함이 싹 가신 눈빛이었다. 소년 때의 그 맑은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그 눈물을 본 순간 채영은 가슴이 싸해졌다. 채영은 차가워지는 가슴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이렇게 잔인해지는 자신이 싫었다.

“날 사랑해?”

상우의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네가 떠난 이후로 나는 계속 널 기다렸어.”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상우가 겨우 말을 꺼냈다.

“기다리는 동안 정말 온갖 감정이 다 들었어. 죽을 만큼 슬펐다가, 가슴을 도려내고 싶을 만큼 미웠다가, 머리가 터져버릴 정도로 보고 싶다가, 하루 종일 드는 네 생각에 행복했다가......그렇게 매일매일 정신병자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까 진짜 미치겠더라고.”

“그렇게 나한테 말도 안하고 사라져버린 네가 미웠어. 정말 결국에는 네가 밉더라.”

“한 마디라도 듣고 싶었어.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말 한 마디도 없이 떠나고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내 생각은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 그 작은 동네에서 뭔 일인들 소문이 안 나겠어?”

“그래도 딱 한 마디, 딱 한 번. 딱 그 한 번이 필요했어.”

침묵이 깔렸다. 채영은 차갑게 쿡쿡 쑤시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이걸 놓쳐버리면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상우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를 찾으러 안 가본 곳이 없어. 그러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고.”

“이 눈에 상처 보여? 다른 가게에 들어가서 너 있는지 찾아보려다가 가드가 칼로 그어버렸어.”

상우가 흉터가 남은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덩치들한테 얻어맞은 이후로 정강이뼈가 부러져서 제대로 뛰지도 못해. 갈비뼈는 벌써 몇 대나 부러졌는지 알 수도 없어.”

채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팔로 감쌌다. 한기가 내장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깨지고 부서지고 부러지면서 찾아온 거야.”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어. 너를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너를 찾았어. 왜 그랬을까.”

“사실은 네가 밉지 않았다, 뭐 그런 건 아냐. 난 지금도 네가 미워. 앞으로도 계속 미울 거야. 네가 미워.”

채영이 천천히 떨리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상우는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채영은 마주친 상우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봤어. 이렇게 미워하는 널 계속 찾아다니는 난 뭘까.”

“하루는 덩치들에게 산으로 끌려와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어. 비가 오더라고. 그날은 진짜 이놈들이 작정하고 패더라.”

“다 끝나고 나서 그렇게 내리는 비 맞으면서 누워있었어. 그때 문득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너를 찾아야하나. 왜 이렇게 해야 할까.”

채영은 떨어지지 않는 상우의 눈을 바라보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상우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침묵이 다시 시작됐다. 둘의 숨소리와 쿵쿵대는 채영의 심장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텅 빈 침묵이었다. 채영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채영은 지금까지 상우가 자신에게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게 된 것이었다. 부서지고 구겨지고 잔뜩 짓밟힌 초라한 길. 그 길이 그렇게 짓밟힌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채영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평생을 사죄해도 모자랄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했냐하면.”

상우가 침묵 사이로 말을 다시 꺼냈다.

“넌 내 시작이었어.”

“내 모든 것의 출발.”

상우가 처음 만난 날 했던 연어 이야기는 채영을 보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건 상우 자신의 이야기였다.

“아직 널 사랑 하냐고 물었지.”

“널 사랑해.”

채영은 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전에도, 아직도, 앞으로도.”

채영은 문 앞에 주저앉아버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가슴에 얼어붙어 막혀있던 무언가가 깨진 느낌이었다. 가슴 속에서부터 차가운 무언가가 계속 흘러나왔다. 채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흐느꼈다. 상우는 그런 채영을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채영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10. 회귀

 

‘봄 춘春’자가 써진 간판이 달린 가게의 문이 열렸다. 하늘에서 눈이 잔뜩 내리고 있었고, 이미 이전부터 내린 눈 때문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있었다.

“너를 못 잊었어. 아직도 너를 사랑해.”

채영은 한참이 지난 뒤에 상우에게 말했다. 상우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돌아갈 수 없어.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

멀리 간만큼 내가 찾아왔어. 상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못 가.”

채영이 고개를 들며 상우에게 말했다.

“내 시작은 거기 없어.”

채영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채영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진심어린 미소였다. 상우도 자신도 모르게 채영을 따라 살짝 웃었다. 채영을 따라 웃던 상우는 채영에게 더 이상 들을 수 있는 말은 이제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채영의 눈, 입꼬리, 모든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채영의 미소를 보자 상우는 왠지 가슴이 말끔히 비워진 것 같았다. 상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채영에게 원했던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말이든, 상우가 바라던 것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없었다. 그냥 채영 그 자체라면 된 것이었다.

“그래. 안녕.”

상우가 인사했다.

“안녕.”

채영도 인사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 덮인 굴곡들에서 드러나는 음영만이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상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 가득히 냉기가 들어왔다. 상우가 숨을 후우 내뱉었다. 하얀 입김과 함께 머릿속과 가슴속을 가득 채우던, 그 동안 상우를 움직이게 했던, 뜨겁게 달아올라 몸속을 헤집어놨던 ‘그것’들이 상우의 입에서 빠져나갔다. 상우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왼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눈이 점점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거리에 발자국을 꾹꾹 찍으며 상우는 걸어갔다. 뿌연 눈발들이 곧 상우의 발자국을 지우고 뒷모습을 가려버렸다.

채영은 침대에 천장을 보며 누워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던 상우의 뒷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아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채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찾아온다는 말도, 찾아오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채영은 상우가 이제 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채영은 상우가 한 말들을 조금씩 곱씹어봤다. 상우는 채영이 자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채영은 정말 오랜만에 동백리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마치 수채화 물감이 도화지에 번지듯이 조각조각 기억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번져나갔다. 어두운 집안, 길가에 핀 빨간 동백꽃, 냇가에 흐르던 물소리, 떠들썩한 장터, 집안 곳곳에서 풍기던 술 냄새, 고함소리, 술병에 얻어맞은 머리 어딘가에서 흐르던 끈적한 무언가, 물건이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들. ‘술개’에게 얻어맞던 기억들이 떠오르자 몸 여기저기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술개’가 휘두른 술병에 맞아서 터졌던 왼쪽 머리, 날아든 밥상에 치였던 오른쪽 옆구리, 옷장에 부딪혔던 왼쪽 어깨, 새끼줄로 몇 번이고 얻어맞았던 등짝......마치 지금 당장 얻어맞은 것처럼 몸의 곳곳에 통증이 일었다. 잠시 번지던 물감들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고통만 남았다. 채영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난 통증을 견뎌보려 했다. 아픔과 두려움이 눈가에 맺혀 투툭, 떨어졌다.

그때 다른 색깔의 물감이 한 방울 채영의 머릿속에 떨어졌다. 일렁, 파문이 생겨났다. 어린 상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기억이 터져 나왔다. 개울가에서 처음 만난 것, 둘이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았던 것, 놀다보면 어느새 해가 붉게 물들어있던 것, 밥상으로 얻어맞고 마당에 쓰러져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것, 개울가 둔덕 뒤에서 꼭 끌어안고 밤을 지새웠던 것, 울던 자신의 어깨를 감싸던 팔, 따뜻하고 넓은 가슴, 부드러웠던 입술, 미끄러져 가로지르던 혀, 채영의 몸을 다정히 쓰다듬던 상우의 큰 손, 안겨있으면 미친 듯이 뛰던 가슴, 가쁜 숨, 빗소리 같이 들리던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짓이겨진 여뀌풀에서 피어나던 풋풋한 냄새. 터져 나온 기억들이 채영의 주위를 둘러쌌다. 채영은 휩쓸렸다. 굳게 닫아놨다고 생각했던 채영의 가슴에 상우가 낸 작은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채영은 그대로 눈을 감고 그 틈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갔다.

따르릉.

호출벨이 울렸다. 채영은 웅크린 채로 부스스 눈을 떴다. 옆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에 비해 정신은 맑았다. 채영은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따르릉, 호출벨이 다시 울렸다. 채영은 더듬더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올래?”

‘엄마’였다.

“미안해요. 요즘 매번 폐만 끼치네.”

“됐어. 이제 너 한 달 동안 외출 없을 줄 알아.”

“알겠어.”

“나갔다와. 애들은 안 붙여줄 테니까.”

‘엄마’는 무심한 듯 툭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채영은 수화기를 내려놓다가 수화기 옆에 놓인 쟁반을 발견했다. 쟁반에는 채영이 카운터에 두고 온 콜라가 놓여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채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옷장 한쪽 깊숙한 구석에 놓인 종이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채영이 처음 ‘春’에 왔을 때 입고 있었던 옷이 들어있는 쇼핑백이었다. 채영은 잠시 쇼핑백을 바라보다가 손에 집어 들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 바깥은 이미 깜깜해져있었다. 바닥에 쌓인 눈이 나트륨 가로등의 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냉기가 채영의 옷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채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피어난 입김이 시야에서 공중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깊도록 까만빛이 가득 차있었다. 세상은 조용했다. 몇 시일까. 가로등 빛에 가려서 별이 보이지 않았다. 채영은 가게 앞을 둘러보았다. 풍경은 눈에 덮여 그 실루엣만 드러나고 있었다. 채영은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생각이 났다. 채영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 들었다. 낡고 헤지고 더럽고 구겨진 옷이었다. 잠시 동안 옷을 쳐다보던 채영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로 옷에 불을 붙였다. 오랜 세월을 옷장에 놓여있던 옷은 금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불이 점점 커졌다. 채영의 얼굴에 불의 열기가 느껴졌다. 채영은 타고 있는 옷을 눈 위에 내던졌다. 떨어진 자리에 쌓여있던 눈이 스르륵 녹았다. 옷이 거의 타들어가자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채영은 그 위에 옷이 들어있던 쇼핑백을 던졌다. 불이 다시 타올랐다. 채영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꽁초를 불에 던졌다. 치익, 소리가 났다. 채영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폐 속까지 빨아들였던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가 형체 없이 뭉게뭉게 하늘로 올라갔다. 잠시 그 흔적을 바라보던 채영은 오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나긋하게 울려 퍼졌다.

 

부산 집 화단엔 동백나무 꽃이 피었고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안부를 물어 볼 때면,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죠

거긴 벌써 봄이 왔군요

 

하지만,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눈 비비며 겨울잠을 이겼더니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발 디딜 틈 없는 명동 거리로

그대 살던 홍대 이층집 뜰에

우리 할아버지 산소위로

조용히 쌓여만 가네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얼었던 내 마음도 열 틈 없이

 

내 사랑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조용한 거리 속으로 채영의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들어갔다. 채영이 뱉은 입김이 흐려지는 만큼 채영의 노래도 멀어져갔다. 서 있던 가로등이 몇 번 깜빡이더니 이윽고 툭 꺼져버렸다. 동시에 거리에는 차가운 어두움과 쌓인 눈이 반사시키는 뿌연 빛만 남았다. 보이지 않는 멀고 높은 하늘에서는 막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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